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 부석사를 다녀와서
"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 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 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 밖에 없다.
무량수전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 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꿀어 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리 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지주가 서 있는 절 밖, 그 넒은 터전을 여러 층 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놓은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이 지나는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썩어서 높고 긴축을 쌓아올리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의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미를 표현하는 데 이처럼 소박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문장이 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명문장이 된 최순우교수님의 "부석사 무량수전" 편에 들어 있는 전문이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질리지 않고 아무리 곱씹어봐아도 물리지않는 이 표현을 마음에 담고 가족들과 함께, 사과꽃이 만개한 오월에 부석사를 찾았다.
햇살이 그 힘을 잃어 먼산 너머로 떨어져 내릴 즈음에 맞춰 무량수전에 오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에 시선이 머물며 세상속에 시끄러움에서 잠시 벼껴 서있는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절 집인 해인사, 송광사, 불국사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우선 가람의 배치가 넓고 편편한 마당위에 세워진 여타의 절집과 달리, "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고", "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산을 허물거나 능선을 베어내지 않고, 고즈넉하게 시선을 높여가듯이 지천에 널린 크고 작은 돌과 바위로 적당한 비스듬을 치장해 놓아 정감이 배어나는 절이다.
사과꽃이 소박하게 흐드러지면 소백산 기슭에 살포시 들어앉은 부석사에 가볼 일이다. 그것도 햇살이 힘을 잃는 저녁무렵에 가야 소백산 너머로 기운 하루를 아쉬워하며 적막에 우짖는 목어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