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두발로 누빈 세상/31. 산행일지

[2015.10.25] 지리산 화대종주2-화엄사에서 노고단 오르는 길이 이리 힘들었나

학이시습지야 2015. 10. 2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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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5 어제 밤에 맞추어 놓은 귀뚜라미 알람이 나를 깨운다. 어제 꾸려놓은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무게가 제법20kg에 육박하는지 근 10년 가까이 산행을 멀리하면서 부담을 느낄 정도로 무끈하게 어깨를 압박한다. 잠실나루에서 버스를 내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데 허리에 배낭 무게 압박을 느끼게 한다.

  종주산행이 과연 몸에 무리를 주는 것이 아닐까? 자꾸 작년에 무리했던 자전거 종주의 후유증이 수술로 이어졌던 악몽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괜스레 고집을 부린 장거리 산행이 다시 몸을 망치게 되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계획을 접고 집으로 돌아갈까하는 번잡한 생각을 하는 사이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서고 있다.

 

  잠실나루에서 지하철로 갈아탔다. 사람이 듬성듬성하다. 이른 아침이라 없구나 싶었다. 하지만 교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탔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휴일 새벽부터 어딜 가는 사람이기에 이리 많을까. 난 평일 아침조차 바쁠 꺼리가 아직 없는데, 하는 마음으로 문 앞에서 기대 있는데 남부터미널에 전동차가 정차했다

 

  06:30 구례, 하동행 버스에 올랐다. 역시 빈자리가 없이 좌석을 채우고 출발했다. 나처럼 묵직한 배낭을 채비한 분들도 여럿 보였다. 07:55 탄천휴게소에 차가 멈출때까지 잠에 취했다. 

 

09:15 버스가 속도를 줄인다. 남원분기점울 지날무렵이다. 안개가 제법 두텁게 시야를 흐린다. 파란 하늘을 가리고 산과 마을이 안개 뒤에 숨어서 흐릿하게 스쳐나간다. 탄천 휴게소를 출발하면서 부터는 잠이 오질 않아 창밖에 시선을 던지고 생각이 흐르는 대로 놔두고 있었다. 잘만하면 내일 아침에 노고운해를 볼 수있는 행운이? 하는 들뜬 기대감으로 갖게 하는 날씨 모양새다.

 

  09:35 구례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화엄사로 가는 버스가 10:20에 있어 근처 식당에서 아침겸 점심요기를 했다. 서울서 부터 자전거를 내가 타고 온 버스에 싣고 온 60대로 보이는 부부 라이더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섬진강 종주라이딩 중이라고 한다. 임실에서 곡성까지는 잔차길 상태가 매우 좋지않다는 말씀을 뒤로 하고 시간에 임박한 화엄사행 버스에 올랐다  

 

  11:00 화엄사 정류장에서 내려 다시한번 짐을 산행에 알맞게 정비하였다. 스틱 길이를 조절하고, 자켓은 배낭에 매달고, 카메라는 렌즈를 결합해 목에 걸고, 배낭끈을 몸에 맞게 조절하고... 7km에 이르는 오늘 산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지리산은 여러차례 등산을 해보았지만 화엄사에서부터 산행들머리를 잡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화엄사-대원사에 이르는 화대종주의 출발선에서 약간은 가슴이 설레이는 걸 느끼면서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절집 경내에 이르기까지 잘 닦여진 도로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산행을 시작했다.

 

  12:00 신라 진흥왕조에 연기조사에 의해 지어진 화엄사는 국보와 보물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제법 높은 이름을 가진 절집이다. 임진왜란에 불탄 걸 조선 숙종조에 중장하여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각황전은 애초부터 단청을 입히지 않았는지 색조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각황전 앞에 있는 석탑과 석등을 사진에 담고 경내를 벗어나 불일암 오름길에 있었던 산죽 사이 오솔길을 올라가니 구층암이 나왔다.

  죽은 모과나무를 손보지 안고 있는그대로 형태를 암자 기둥을 세워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주춧돌에서 서까래까지 죽은 모과나무 형상에 맞춰서 조립했다. 암자 앞에 서있는 석탑이 깨지고 부서진 조각을 간신히 꿰맞추어 세워놓았다. 다만 다른 유적처럼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으면 모두 없애버리고 새 돌이나 나무들을 가져와 다시 세워올리고 복원하였다는 천박한 유물관리 수준에 비하면 훨씨 소박하고 옛스럽다. 로마에 가면 지금도 빗자루와 손만으로 고대 유적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복원하는 모습을 보는 거 같아 한편으로 다행스러워 보였다.

 

  12:20 구층암에서 길머리를 등산로 잡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화엄사를 지나 두번째 이정표가 될 연기암까지는 넓고 납작한 돌들로 포장된 산길에다 오르막 경사도 미미해 부담없이 걸어오를 수 있다. 연기암 가기 전에 개울을 건너는 다리 밑에 앙증맞은 돌탑이 서있다. 마치 나부끼는 치마를 입은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어느 분이 세워 놓으셨는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불안정한 모습인데 제법 안정감있게 서있다. 그 분의 정성이 지나가는 산객에게 보는 즐거움을 준다. 사실 저렇게 가던 길을 멈추고 돌탑도 정성스레 쌓아보는 여유를 가지면서 산행을 해야는데...

  연기암 경내로 올라서면 구례시내와 시내 주변의 추수를 기다리는 누런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다. 한 쪽에 마련된 샘터에서 두 세바가지 물을 벌컥이고 이내 산행을 이어나갔다.


  13:30 참샘터를 지나 국수등까지 오름길은 너덜바위들로 스틱을 디뎌도 자꾸 미끌어진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고개까지 7.0km의 딱 절반이 국수등이다. 화엄사에서 산행시작 초기부터 등로는 계곡과 평행을 이어가는데 국수등에 이를 때까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지저귐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저 물소리 대신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잎 흔들리는 소리로 바뀌어야 정상이 가까워지는건데. 오늘따라 물소리가 참 얄밉다. 흐르는 물소리에 흐르는 땀을 식혀갈 양 마음을 바꾸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걷다보면 이 힘든 구간 또한 지나가리니.. 

  14:50국수등을 지나면서 등로가 지그재그가 아니라 일직선으로 위로 곧게 난 된비알이다. 일명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심하여 코재라 부르질 않는가. 20분 정도 걷다가 쉬고 하길 반복하였다. 거친 호흡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작년 이맘때 수술했던 요추 주위가 기분이 나뿔 정도로 아프다. 허리끈을 고쳐매고, 어깨끈을 느슨하게 해도 마찬가지. 어쩔수 없이 자주 쉬어주는걸로 해법을 강구했다. 고개를 들어봐도 하늘은 뵈질않고 오르막 돌길만 보인다. 거리목은 여전히 노고단고개까지 1.5km남았다고 알려주고.

 

  15:20 요추언저리가 계속해서 무끈하고, 이따금씩 따끔거리는 통증이 올때마다 이번 종주산행이 또다시 내 몸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 있진 않은건지 하는 생각에 내 육신에게 미안하고 안스럽기까지 하다.

  나처럼 홀로 산행에 나선 분이 참샘터부터 앞서거나 뒤서거니 하다가 집선대부터는 아예 동행하게 되었다. 공직에 계신 분인데 안식 휴가를 10일받아 여행에 나섰다고 한다. 이 분과의 동행에 힘을 얻어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진 마지막 구간을 한걸은씩 위로 올려갔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이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걷기만 하자면서 마음을 다잡는데, 드디어 시야가 트이고 사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마의 구간을 넘어 무넹기고개에 올라선 것이다. 종주산행의 첫번째 고비를 넘어선 것이다. 오르면서 나를 괴럽혔던 통증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몸마져 한결 개운하다.

 

  15:50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산장 입실은 다섯반부터 가능하다고 하여 잠시 휴식을 가지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의 첫번째 대피소 역할을 한다. 많은 분들이 성삼재에서 종주산행을 하기 때문에 노고단 대피소는 이들에겐 그냥 잠시 쉬어가는 느티나무 역할이지만 화엄사를 산행 들머리를 잡고 올라오는 우리같은 산객에겐 아주 요긴한 산장이다. 마침 일요일 오후 시간이라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종주를 마치고 내려가는 분들이 마무리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한 모습들이다.

 

  올라오면서 땀으로 흠뻑 젖은 옷에다 바람에 온도마져 낮아져 한기가 약간 몰려온다. 서둘러 불을 피우고 동행 산객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면 반주까지 곁들였다. 나는 체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가능하면 짐을 줄여오는 바람에 필수 식량만 준비해왔는데 반해 그 분은 제법 만찬 수준의 식사를 준비해오셨다. 소주도 8개나 가져오고 햇에 김치에 캔요리에 없는게 없다. 하기 배낭 외형 사이즈도 나보다 훨씬 투터웠다. 더우기 DSLR 카메라에 망원렌즈까지... 내가 준비해간 200ml소주 한 팩과 그 분의 소주 두 팩을 나누어 마시면서 저녁만찬을 마칠 즈음 구름을 벗어난 해가 서산으로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노고단 정상 위로는 둥근 달이 휘영청 지리산을 밝히면서 떠올랐다. 자연은 하나를 주면 하나를 뺏어가고 하나가 기울면 다른 하나가 대신 떠오르고.. 


  때를 알아 미리 자리를 남겨두고 스스로 떠나가는 지혜를 자연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지만, 그 자연 속에 사는 인간은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 탐욕하고 더 버티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 않는가! 이제 떠나는 내 모습이 덜 치사해지고 덜 추해려면 어찌 해야는지 자연은 가르쳐 주고 있다. 가는 자의 어깨는 힘없이 늘어진 모습이고 오는 자의 얼굴에 만면의 미소가 그득하고. 그렇게 세상은 비우듯 채우고, 또 채우듯 비우는 것이리라. 지리산에서 맞이할 오늘 저녁은 왠지 모를 감성에 젖어본다.

     대피소에서 입실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온다. 편백나무로 새롭게 단장한 침상은 개인별 독립형 침상이다. 개인 사물도 놓을 수 있는 여유공간도 있다.

 내일은 노고단에서 세석까지 20여키로, 오십리길 산행을 해야한다. 누워서 내일 산행 코스를 미리 도상 훈련삼아 짚어본다. 노고단 - 임걸령 - 반야봉 - 삼도봉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산장 - 삼각고지 - 형제봉 - 벽소령산장 - 덕평봉 - 선비샘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산장. 일찍 자두어야 피로도 풀리고 새벽산행이 가능하여 여덟시도 안된 시각에 억지로 잠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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