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33에 말뫼에서 출발한 열차가 Trelleborg에서 여객선에 실린뒤 잠시 여객선 갑판에서 군것질하고 바로 열차의 침대에 누었는데 어느결에 밤이 들었나 보다. 차창 밖에서 얇은 빛이 객실 안을 어둠을 걷어내고 윤곽이 뚜렸하게 사물을 구별할 정도로 밝다. 침대칸 한 켠에 마련된 수도에서 간편세수로 잠을 깨우고 문밖으로 나왔다. 베를린으로 향해 새벽을 달리는 열차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서늘한 기온에 약간의 한기가 돈다. 새벽에 일어나 하염없이 지나치는 경치에 무심히 시선을 던지고 앉아있으니 아무 생각도 들지않는 무념무상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질 않고 이렇게 있고 나를 태운 인생만이 저혼자 무한질주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념에 한참을 있으니 베를린에 도착하려는지 승무원이 어제 걷어간 여권을 다시 돌려준다.
베를린에 도착하자 짐을 챙겨 대합실로 나와 갈아탈 열차가 몇번 홈인지 확인하고 구내에 있는 햄버거집에서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했다. 아침 여섯시 10분에 도착했는데 갈아탈 열차는 6시 50분에 출발한다. 플렛폼에 나가려니 아침 한기가 제법이라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여기가 독일인 것을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ICE(이체, 독일이 자랑하는 고속열차)가 각 플렛폼마다 보인다. 한국의 고속열차사업에 TGV와 경합을 벌이다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준다는 부가 조건 때문에 뛰어난 안전성과 보다 나은 기술 이전 조건임에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 ICE다. 외규장각도서는 프랑스가 도적질해간 걸 주인에게 그냥 돌려주어야 되는데 비즈니스 도구로 우리의 문화유산이 전락된 게 참으로 슬픈 사실이다. 하긴 이렇게라도 돌려받는게 어디야 할 수도 있는 것이 일본은 아예 보여주지도 않고 있지않은가,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 중에서 어느 것이 그들의 지하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니 조상이 얼마나 한스럽게 후손을 굽어보고 있을까??
베를린에서 대략 4시간 반가량 걸려 드디어 프라하의 홀레쇼비체(Holesovice)역에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프라하지만 미리 공부를 하고와서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역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 메트로로 갈아타고 다시 트램을 바꿔타는 수고를 해서 예약한 딸기민박집에 도착했다. 프라하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주택가에 개설된 한인민박인데, 넓은 아파트를 임대하여 방 세개를 민박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우선 현찰로 방값을 지불하고 바로 프라하투어를 위해 집을 나섰다.
오늘은 오후시간 밖에 없어서 우선 프라하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페트르진공원 내에 있는 전망타워에 올라 백탑의 도시, 붉은 지붕의 전시장의 본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다음, 프라하성과 비타성당을 거쳐 황금소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해가 저물 무렵이 되고, 카를교 아래에 도착할 것이다. 프라하를 모든 여행객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프라하성의 야경을 감상하는 일정으로 오후일정을 잡았다.
일일 유효패스를 기차역에서 구매하였기에 숙소 가까이에 있는 트램을 타고 시내로 가서 지도에서 확인한 전망타워에 도착했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붉긋붉긋한 지붕들이 낮게 깔려있고 중간중간에 높이 솟아있는 시청사와 화약탑의 거무티티한 모습이 섞여있다.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 강위에 몇 개의 다리가 보이는데 유독 지나가는 사람이 많이 보이는 다리가 카를교이다.
전망타워을 내려와 프라하성으로 걷다보면 페트르진 언덕에 스트라호프수도원에 다다른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배경이 된 수도원으로 모차르트가 직접 연주했다는 바로크풍의 오르간이 있는 성당과 수만권의 고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도원 앞의 내리막길을 걸어내려가면 예쁜 종탑을 이고 있는 로레타성당을 만난다. 바로크 양식의 이 성당을 옆으로 비껴 네르도바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드디어 프라하 성에 이르게 된다. 네르도바 길에 서있는 건물들 입구는 각자 독특한 장식을 가지고 있는데, 번지수가 붙여지기 전에 집주인의 직업이나 단순한 장식을 붙여 집을 구분하는 용도로 붙여졌다고 한다.
체코를 대표하는 프라하성은 9세기말에 건설을 시작해서 14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으로 골격을 갖추고 18세기말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하였다. 길이 570m, 너비 128m에 이르며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는 왕궁과 성 비투스성당 및 두 개의 작은 성당과 수도원이 들어있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방식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양식이 가미되는 등 총 900년 가까운 건설기간 동안 다양한 건축양식이 함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성입구에 들어서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왕궁이 서있고 런던의 버킹검 궁전과 같이 근위병교대식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위용과 절도면에서 버킹검에 전혀 비할 수준이 아니다. 단지 흉내 수준에 머물정도다. 시간이 없어 왕궁 내부 관람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바로 성 비투스성당(St. Vitus Cathedral)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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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25년에 짓기 시작해서 약 1000년에 걸친 기간동안 건축되어 1929년에 완공을 본 대성당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총 26,000장의 유리가 소모된 길이 10m에 이르는 장미의 창이다. 체코를 대표하는 아르누보 작가 알폰스 무하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이외에도 과거 왕들과 성인들의 무덤이 화려한 장식을 이고 있고, 크고 작은 기도실들이 내부에 들어차 있다. 길이 124m, 너비 60m에 천장 높이가 33m에 이르는 규모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스테인드 글래스에 그려져있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수채화같은 그림에 또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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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성을 나와 성 아래로 내려서니 좁다란 골목에 아기자기하고 자그마한 가게들이 어깨를 나란이해서 서있다.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금세공인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지금은 대통령 영부인재단에 소속되어 작은 가게로 운영된다고 한다. 특히 22번지 가게는 내게는 감히 읽어볼 엄두마져 앗아간 실존주의 대표 소설가 "성", "변신"의 작가 카프카가 작업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나니 갑자기 더 이상 볼게 없을 것같은 허탈함이 덮쳐온다. 몇년 전 아이들과 추운 겨울에 방문했던 성베드로(St. Pietre Catherdral)를 보고 나오니 앞으로 더 이상 볼게 없을 것 같았던 그런 허전함이었다. 이래서 세기적인 명승지와 훌륭한 유산은 여행 전체 일정의 말미에다 집어넣어야 할 거 같다. 소설에서 대단원을 긋듯이 말이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이내 발걸음이 바빠졌다. 빨리 카를교를 건너서 블타바 강물위로 아름다운 야경 모습을 드리울 프라하성의 야경을 감상하여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프라하에 온 주목적은 단하나 프라하성의 야경을 보러왔다고 해도 과언이지않은가! 카를교 위에 서있는 성현들의 동상은 아랑곳 하지않고 카를교를 바로 가로질러 구시가쪽 다리 아래에 내려섰다. "아르다운 도나우강"을 작곡한 스메타나의 동상에 기대서서 황홀한 프라하의 야경에 드디어 빠지고 말았다. 가지고 간 허접한 카메라에 사각대를 세워놓고 별로 바꿀 구도도없이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혼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으며 프라성의 즐기고 있으니 야외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나이 지긋한 부부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보인다. 그제서야 아! 여기가 레스토랑 야외테이블 자리란 것을 알게되었다. 어쩔 수 없이 스테이크에 생맥주 한 잔으로 저녁요기를 하고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래는 DSLR로 찍은 거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