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World Tour/45. EMEA

2003년 2월 아이들과 함께 한 서유럽 4개국 여행 2 - 첫째날, 출발 로마로!

학이시습지야 2015. 7. 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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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이란 무엇인가?

 

  어릴적부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싶어하는 내면의 욕구가 남들보다 강해선지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동경하였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은 서울이나 다른 도회에서 온 친척들을 자랑하며, 또 그들이 자랑삼아 늘어놓는 도시 아이들의 생활이나 그 도시의 자랑거리를 들으며 우리집은 왜 그 친구들의 친척들이 사는 곳에 우리 친척은 하나도 없나 하는 부러움과 시샘이 무척 많았다.

 물론 내가 태어난 고향의 언저리에는 몇몇 친척들이 살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 고향(경북 예천의 두솔봉과 학가산 자락의 한 산촌마을로 한번 갈라치면 도고온천에서 꼬박 하루를 허비해야 갈 수있는 곳)이라는 곳이 내가 당시에 살던 곳보다도 더 낙후된 산골마을이어서인지 친구들이 자랑하는 그런 도회하고는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과 포항에 외삼촌이 사시고 계시며 외사촌들 중엔 나와 비슷한 또래도 있다는 말씀에 어느 해인가 아마 중학교 1학년 무렵 어머니에게 무조건 가보겠다고 주소하나만 달랑 들고 서울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읍단위 규모의 온양온천만 보아온 내 안목에서 서울도 그 수준이 아니겠는가 하는 우물안 개구리 시야로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서울역을 빠져나온 나에게 서울은 결코 걸어서 행선지를 찾아다니던 나의 생각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모습 그자체였다. 쉴새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수와 넓게 뚫린 도로위의 차들 앞에서 어떻게 과연 내가 외삼촌 집을 찾아갈 수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우선 도봉구 창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야한다는 외삼촌의 일러주심을 상기하면서 시내버스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당시 나는 시내버스를 타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타야하는 다른 사람에게 물러보아야 하건만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뭔가를 물어보는 것이 왜 그렇게 싫게만 느껴지는지…… 아마 이런 버릇이 여행에 있어서 필수적인 길눈을 다른 사람보다 쉽게 틔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하여튼 시내버스를 타고 동대문을 지나고 미아리고개를 넘어가서 대지극장을 지나치니 창동행 7번 버스는 종점에 다다르고 나는 거기서 내렸다. 버스에 내리자 외삼촌이 일러주신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모습들은 이어가면서 나는 성공적으로 서울에 사시는 외삼촌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요즘에 와서 그때를 상기하면 한편으로는 겁없이 돌아다녔다는 생각과 함께 만약 서울역에서 소위 말하는 무작정 상경하는 아이들을 주어가는 그들에게(?) 채여가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이다 싶은 아찔함마져들 때가 있다. 만약 우리아이들이 나와 같은 이런 짓(?)을 한다면 나는 허락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내가 소심한 부모라서일까, 아니면 세태가 그때보다 많이 나빠졌다고 변명을 해야하는 걸까.

 

여행은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심에서 시작하여 여행 중에 마딱뜨리는 불확실성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예기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여서는 자신만의 해법찾기 게임일 것이다.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역사와 지리시간에 만날 수 있는 우리와는 또 다른 세계에 사는 그들의 조상이 누려온 복록과 수난과 영광의 흔적과 발자취, 유적을 돌아보고 싶은 막연한 동경과 욕망이 나 안에 내재되어 있었음을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알게되었다. 그 중에서도 세계사의 중심축으로 자임하며 끊임없는 부침과 투쟁, 영광의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유럽이 무척이나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삼국이 자웅을 겨루고 있을 무렵 로마의 한 작은 언덕에서 출발한 로마제국이 벌써 서아시아에서 아프리카북부, 유럽대륙을 절반을 평정하고 지금도 경외의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문화적인 꽃을 피워냈고, 그 문화의 뿌리를 밑거름으로 세계사에서 지금까지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나를 동요케하여 왔다.

 이런 나의 욕망에다 한창 커나가는 아이들에게 해외여행이라는 경험을 만들어주자는 나의 제안에 아내도 흔쾌히 동의하여 오늘 나는 우리가족과 함께 결코 넉넉지 않은 경제적인 여유지만 호기를 부리며 이곳에 왔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함께 동참하자고 하였건만 직장에 매여서 갈 수 없다는 뿌리침에 할 수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왔다. 다음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단둘이 오자고 약속을 하고나서….

 

 여행에 앞서 아이들에게 조건을 제시하였다. 아직은 여행이 주는 참 맛을 알 수 있을 만큼 성숙되어 있지 않았기에 여행에 소요되는 금전적인 부담을 조금이나마 상쇄하고 기왕에 떠나는 여행이므로 의미있고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조금 더 많아지라는 생각에서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영어회화 암기를 주문하였고, 또한 이번에 방문하는 나라 중에서 각자에게 한개 나라씩 여행지의 정보와 문화유적의 내력등을 공부하여 설며하도록 숙제를 주었다. 영어회화는 아이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리만치 잘해내었다. 이제는 나의 몫만 남았다. 녀석들이 익힌 내용을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옆에서 잘할 수있도록 도와주는 일만이 남았다.  

 

 2. 드디어 출발이다!

 

 지난 두어달을 이번여행을 준비하느라 인터넷과 여행관련 책자들과 씨름하였다.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만져보기위하여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살아있는 정보와 경험담을 클릭하여 우리의 여행일정을 완벽하다싶으리만치 구축해나갔다. 여행일정과 코스 설정, 항공권 구입, 유레일패스 선정, 저렴하고 편리한 숙소 예약, 짧은 일정이 주는 시간 제약을 효율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낭비시간을 최소화하기, 문화유적에 대한 많은 상세설명들과 못보고 오면 후회될 만한 것들은 절대로 빠뜨리지 않기 위하여 참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정리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 앞으로 녀석들이 스스로 여행을 계획할 때 참고가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보겠다는 희망까지 버무려서 말이다.     

 전날 밤에 마지막으로 준비물을 정리하여 각각의 배낭과 캐리어에 정리하고 쉽게 오지않을 것같은 잠자리에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행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하는 마약이 들어 있는 것일까 좀처럼 잠이 오질 않고 꼭 뭔가를 빠뜨리것 같은 박연한 불안감까지 가세하여 왠지 뒤숭숭하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언제 그랬냐 싶게 쿨쿨 꿈나라로 벌써 가버렸잖아. 원래가 등만 땅에 붙으면 코를 골아대는 잠버릇이 어디가겠는가..

 이른 아침인데 부엌에서 아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먼길을 떠나보내는데 아내와 엄마로서 아침이라도 든든이 먹여보내야 한다는 지극히 모성적인 마음에 아침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가지도 못하면서도 저런 마음과 정성이 지어내는 것이 무척이나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침을 먹고나자 평소와 다름없이 아내는 출근 준비에 무척이나 바쁘다. 늘상 반복되는 일상과는 오늘 아침이 좀달라야 하는데도 아내는 이른 조반을 준비한 것외 에는 별반 다를게 없다. 역시 억척스런 나의 아내다. 아내의 출근 준비가 끝나고 우리 가족은 모두 집을 나섰다. 아내는 회사로 우리는 유럽으로 가기위해서

 도심공항터미널에서 항공권을 발권하고 출국수속을 마쳤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보는 지상의 신기함과 모형처럼 내려다 보이는 땅위의 모습을 질리도록 보라고 창쪽으로 좌석을 배정토록 부탁하여 내려다 볼때 날개가 방해되지않은 좋은 자리를 얻었다. 마일리지도 입력되었는지 몰러보자 마일리지 혜택으로 구매한 항공권은 마일리지를 주지않는단다. 하긴 공짜로 얻은 항공권에다 다시 마일리지를 주면 항공사 입장에서는 여간 손해가 가는 게 아닐까 싶다가도 이번 여행으로 상당한 마일리지를 쌓을 수있고 그걸 보태서 2년후에 아내와 함께 다시 유럽을 가려고 했는데.. 이런 2년 후의 계획은 원점에서부터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땐 Air France에서 파는 할인항공권을 구매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겠다.

 리무진버스로 공항을 가는데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해외 출장으로 자주이용하다보니 새삼스런 것도 없고 어제밤 늦게 잠들어서 일것이다. 인천공항에 도착, 출국장을 지나 면세점을 들렀다.

 이번 여행을 위하여 부담스런 지출로 준비한 디지털 카메라용 다용도콘센트와 아이들이 들고 온 미니카세트용 밧데리를 사려고 하였는데, 공항에서는 밧데리를 팔고있지 않는단다. 9.11테러 때문에 내려진 조치인가??  탑승개시 안내와 함께 우리는 일찌감치 비행기에 올라 지정된 자리에 않았다. 자리가 아주 명당(?)이었다. 아이들을 모두 창쪽으로 앉히고 좀 있으니 진만이 옆자리에도 다른 승객이 자리를 잡았다.

   

 로마로 공부하러 가시는 이재훈신부님이다. 대전교구에 계시는 청년신부인데 5년간의 기한으로 공부하러 가신단다. 가는 도중에 진만이와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초코릿 과자도 나눠먹고, 옆에 함께 가는 동승치고는 아주 좋은 인연이 생겼다. 서로 Email주소도 나누며 5년정도 기간이면 나중에 진만이가 대학생이 되어서 로마에 여행오면 만날 수도 있고.. 나중에 그러기로 했단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마치고 좀 지나니 아이들은 벌써부터 지루하다고 툴툴거린다. 인제 겨우 2시간 빡에 지나지 않았는데 앞으로 10시간 넘게 이 좁은 의자에서 버텨야하니 큰일이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중국땅의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만리장성이 보이는지 한번 찾아보라고 했다. 나 역시 유럽 출장길에 오를때면 북경상공을 지날 때 만리장성을 눈으로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좀처럼 눈에 들어오질 않았는데 오늘도 역시 보이질 않았다. 인공위성에서 유일하게 관측된다는 지구상의 거대한 건축물인데 일만미터 상공에서 찾아내질 못한다. 비행기는 몽고의 드넓은 초원지대를 지나더니 러시아의 넓은 대평원위에 하얀 눈밭 위를 유유히 날고 있다. 배도 넉넉히 찼고 하니 슬슬 조름이 온다. 창문도 모두 내려져 있어 분위기에 편승해 한 잠을 자고나면 유럽상공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꽤 오랜시간을 잤구나싶다. 비행기는 유럽의 지붕이라 일컫는 알프스의 산악지대를 지나고 있다. 이따금 기계에서 타나온 이불솜처럼 포근한 구름이 발아래에 넓게 펴져있다가도, 갑자기 이불은 말끔히 겯혀지고 모형으로 꾸며 놓은 듯 도시의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는 모습들이 깔끔하게 보이기도 한다. 비행기는 모스크바와 바르샤뱌 상공을 벌써 지나 오스트리아 접경지대까지 이르렀건 것이다. 생각보다는 높아보이지 않아보이는 산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와 있다.

 

 문명이 발달한 지금이야 알프스를 발 아래 굽어보면서 유유히 넘어가고 있지만 2000년전 4개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지역을 평정하러 떠났던 카이사르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인 자연 장애물이었을 것이고 아울러 그를 따르던 병사들은 특히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며 이 곳을 넘어갈 때는 엄청난 인내와 고통을 감내하여야 하였을 것이다. 이탈리아를 정벌하러 이 산을 넘어갈 때 고되고 지쳐버린 병사를 당근으로 유혹하던 나폴레옹은 카이사르에게서 어떠한 통솔법과 전략을 배워서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그리고 저 알프스는 이 두 영웅을 과연 어떻게 평가내리고 있을까?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서구의 자연관은 알프스를 단순히 공격대상으로만 보아왔던 것일까……

  

이러한 상념속에서 멍한 모습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는데착륙 준비 중이니 안전벨트를 모두 착용하여야 한다는 기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12시간 가까이를 일반고속버스 좌석같은 의자에서 용케 버텨왔다. 비행기는 안정환선수가 잠시 선수생활을 하였던 Perugia를 상공을 지나 Rome시에서 서남쪽 Fiumichino시에 새로이 건설된 Leonardo Da Vincci공항에 내려앉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진만이와 함께 얘기를 나누었던 신부님과도 다음에 Rome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작별을 나누었다. Rome시내로 가기 위해서 공항과 Termini역을 노스톱으로 이어주는 열차를 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유레일 패스를 개시하기 위하여 발권창구에서 패스를 제시하고 개시 확인을 받은 다음 기차에 올랐다.

 

 Termini역을 나와 이미 예약이 되어있는 M&J Hostel을 찾았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약도를 좆아 가보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테르미니 역에서 우측으로 난 도로를 돌자마자 나타났다. 건물2층에 위치한 프런트에 올라가 예약내용을 말하자 가족실(Private room)으로 이미 예약이 되어있다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권을 제시하고 2일치 숙박비 계산을 위하여 신용카드를 제시하였다. 이런! 신용카드로는 결제가 되지않고 현금으로만 가능하단다. 하는 수 없이 현금으로 지불하였지만 앞으로 써야할 예상 경비와 환전하여온 금액을 머리 속으로 대충 계산하여 보니 어째 대차대조가 맞지 않을 것같아 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꽤어지는 것은 은근한 불안감이 내습하여온다.

 싼 맛에 예약을 하면서도 소위 유럽인데 우리나라의 여관 수준 이상은 되겠지 하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하루밤 잠자리를 제공하면서 그네들만의 낭만과 젊음을 교류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역할이지 일정수준의 시설과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은 아니었다. , 샤워시설, 간단하게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주방시설과 그에 딸린 식탁과의자들, 인터넷을 할 있는 컴퓨터 3대가 전부였다. 그나마는 괜찮은데 방이 왜이리 춥단 말인가.. 관광의 중심지 Rome에 위치한 Hostel이 말이다. 여행에 들떠 있던 마음이 가시고 이제는 정신차려야겠다는 긴장감이 어느 정도 마음속에 들어오고 있었다. 시차 적응을 위해서 얼른 눈부터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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