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두발로 누빈 세상/32. 즐거운 소풍

[제주 올레길따라] 한라산 종주 - 관음사로 내려오지마세요!

학이시습지야 2016. 12. 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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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한라산에 오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배려로 단숨에 성판악에 도착했네!!

  오늘은 한라산을 오르기로 한 날입니다. 어제 저녁부터 틈만 나면 체크한 날씨예보로는 구름조금에 기온이 10도를 상회한다고 하네요. 그동안 여러차례 한라산 등정을 계획하였으나 이러저러한 이유와 장애가 무산시켰는데, 오늘은 그 어떠한 장애와 구실이 없네요. 무조건 등정해야만 하는 날이 되고 말았네요.

  게스트하우스 안주인의 정성스런 배려로 배낭 안에는 삶은 계란, 샌드위치, 감귤, 커피에다가, 아내가 서울에서 준비해 온 사과까지 산행중에 필요한 식량을 충분히 채웠습니다. 어제 아침에 비해 훨씬 가벼워진 배낭과 스틱을 가지고 게스트하우스 바깥주인이 시동을 걸고 대기중인 차에 올랐습니다. 성산에서 한라산행 들머리인 성판악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한시간 넘게 소요되고 더구나 교래사거리에서 갈아타면서 시간이 더 지체할 수도 있어서, 바깥주인이 우리를 위해 아침시간을 할애하여 주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40분 가량 달려서 성판악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날씨가 맑고 따뜻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지만 아침시간의 성판악은 제법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싸늘하네요. 더구나 집에서 짐을 배낭에 너무 꾹꾹 눌러 싸다보니 모자를 빠뜨렸네요. 휴게소 매장에서 부르는 값을 모두 지불하고 회색 털모자를 구매하여 뒤집어 쓰고 드디어 한라산행을 시작합니다.


백록담을 보려면 진달래대피소까지 최소한 12:00 이전에 도착해야..  

  성판악에서 출발한 한라산행은 별다른 어려움없이 속밭까지 내쳐 갈 수 있습니다. 등로는 평평한 오솔길이 이어지다가 때로 나무판자가 길게 늘어서기도 하고 아주 이따금씩 약간의 경사를 만나게 됩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성판악에서 느꼈던 한기가 사라지고 서서히 몸이 더워져오기 시작하고, 급기야 새로 사 쓴 털모자 안으로 땀이 배어들기까지 하네요. 

  한시간 가량을 별다른 무리없이 걸어가면 만나는 곳이 속밭대피소 입니다. 아내와 함께 휴식을 가지며 준비해 간 간식거리로 심심한 입을 달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속밭을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등로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사가 급해지는 구간이 자주 출현하고, 길도 계단이거나 돌들이 많은 너덜지대가 자주 많아지네요. 사라오름 분기점이나 나오는데, 하산길에 들러보기로 합의하고 진달래 대피소까지 내처 길을 재촉합니다. 


  등로의 경사가 제법 길게 나있는 곳에서 한두번 휴식을 갖고 산행을 이어가다보니 어느덧 진달래대피소가 가까운 거리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속밭에서부터 시작된 경사진 등로를 한걸음씩 밟고 오며 점점 가빠져오는 호흡이 제법 거칠어질 무렵, 눈앞에 대피소 모습이 잡히자 지쳐가던 기력이 다시 샘솓으며 없던 힘마져 불끈하네요. 그동안 걸어오면서 눈에 잡히는 경치는 갖가지 황엽수종의 나무들과 바닥을 나직히 덮고있는 조릿대가 전부였지요. 헌데 진달래 대피소에 다다를 무렵부터 하늘과 능선이 시야에 잡히기 시작합니다. 땅만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세상에!!!

  벽공이라는 표현을 저럴때 쓰는구나 싶었죠. 손을 집어넣으면 금방이라도 파랗게 물들어버릴 것처럼 푸르디 푸른 하늘에 구름 한조각 없이 깨끗하네요. 어제 오르겠다는 고집을 이내 접고 오늘로 산행계획을 바꾼 결정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싶으리만치 날씨는 그지없이 좋네요. 진달래대피소에서는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 하나를 먹어줘야만 할거같다. 성판악에서 백록담 정사까지 대략 10키로미터 약간 모자란 거리에 4시간은 족히 걸리는 시간인데 중간에 먹거리를 즐길 공간은 여기밖에 없죠. 내륙의 다른 국립공원처럼 숙박할 수 있는 대피소가 없어 색다른 낭만을 즐길 여건이 못되는 게 아쉽기도 합니다. 알알리 수정처럼 박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재미라든가, 함께한 산행친구들과 통나무 산장에서 술잔을 나누며 세상 사는 정담을 나누는 정취는 기대하기 어려운게 한라산행의 밋밋함입니다. 더구나 진달래대피소에는 '12:00 이후에는 백록담 산행 불가' 라며 제약하는 안내판이 있어 더욱 부담스럽고 강박하는 산행이 되지요. 한마디로 남한 제일봉이지만 '얼른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하는 산'이지요. 


세 번의 외면을 한 번에 갚아준 맑고 푸른 한라산과 제주도 풍경

  진달래대피소에서 넉넉한 휴식을 가진 다음, 다시 산행을 이었습니다. 고도를 높여가다보니 키큰 나무들이 비겨선 자리에 관목들이 듬성듬성 뿌리를 박고 서있고 사방이 확트인 시야를 선사합니다. 1900M라고 쓰여진 표지석을 지날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서귀표쪽 하늘에는 구름이 발아래에서 대지를 덮고 있습니다. 정말 구름이 발아래 솜처럼 깔려 있습니다. 가쁜 숨을 몇번 내쉬지도 않았는데 드디어 백록담, 한라산 정상에 우리 부부가 올라섰습니다. 우선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려고 찾아보니 세개나 되네요. '한라산 정상 나무표지목', '백록담 표지석', '백록담 표지목'. 우리는 차례로 기념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백록담 분화구를 배경을 다시 인증샷을 남긴 다음, 배낭에서 먹거리를 꺼내먹으며 정상정복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주시내는 연무, 박무가 모두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간 것처럼 아주 깨끗한 화질 그자체입니다. 하얀 장난감 비행기가 연신 꼬리를 물고 활주로를 차고 오르거나 내려앉는 것처럼 제주시내가 선명하고 그 뒤 푸른 바다에 떠있는 섬들까지 눈에 잡힐 만큼 환상적인 시계를 자랑하는 날, 우리는 한라산에 오른 것입니다.

     

끝내주는 경치에 취해 흐려진 판단력(?)

  정상에서 멋드러진 풍광에 취하고, 따스해진 날씨에 긴장이 풀려설까?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관음사방면으로 하산길을 잡았습니다. 기왕 한라산을 종주하려면 성판악-백록담-관음사 정규코스를 타야한다는 쓸데없는 명분에 그런 결정을 내리고 하산길에 들어섰지요. 태풍에 날라간 용진각대피소를 거쳐 삼각봉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가진 다음부터는 한없이 지루한 하산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원래 산에 오를 때는 길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로 하고 하산코스는 짧고 빠르게 내려오는 코스를 잡아야 하는 데 한라산은  그런 선택권이 거의 없지요. 성판악-백록담 원점회귀산행이거나 성판악-백록담-관음사 코스인데, 우리가 잡은 관음사 하산 코스는 꽤나 지루한 하산길입니다. 주변 볼거리도 없고 너덜지대 돌밭 하산길은 우리를 많이 지치게 하네요. 

  탐라대피소에 이르니 하산길도 거의 마무리단계라 버스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제주버스 앱을 열었습니다. 헌데 낭패가 몰려옵니다. 관음사로 하산할 경우 관음사 야영장까지 대중교통은 주말에만 운영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화요일! 방법은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가거나 십리정도 떨어져 있는 제주대학병원 정류소까지 걸어가야만 성산가는 버스를 탈수 있다네요. 참으로 지루한 관음사 하산길이 끝나고, 다시 갓길마져 없는 도로를 따라 한시간가량을 더 걸어가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지요. 정상에서 당초 계획한 성판악으로 내려갔으면 벌써 숙소에 도착해 맛있는 저녁을 먹을 시간인데, 아무런 준비없이 무심코 결정한 관음사 하산길은 오늘 하루 일정에서 한없는 먹구름이 되었네요.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제주도에 걷기를 작심하고온 여행이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겨야지.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마져 퇴근시간과 물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동안 점점 배가 고파오네요. 금강산도 식후경에 시장이 반찬! 전에 가봤던 횟집을 다시 기억을 더듬어 마침내 찾았습니다. 여늬 힛집의 메뉴와 달리 우리가 애용하는 이 집은 '오늘의 회 대(大), 중(中), 소(小) 가 주메뉴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하지만 일반 횟집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따라나오는 반찬(쯔께다시)은 몇 개 없는 대신 횟감은 두툼하고 시싱합니다. 오늘 하루 피로는 겨자를 간장에 풀 듯 싹 풀어내고 성산에 있는 숙소로 길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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