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World Tour/45. EMEA

2003년 2월 아이들과 함께 한 서유럽 4개국 여행 6 - 5일차, 스위스 인터라켄과 융프라우

학이시습지야 2015. 7. 1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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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위스의 새벽을 맞아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일찍 눈이 뜨였다. 대략 5시반 정도의 시간이 된 것 같다. 다른 방에서도 첫차를 타려는지 벌써 일어나 퉁탕거리며 부산을 떠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로마에서 추위에 떨며 이틀 밤을 보냈고 그제는 야간 열차 속에서 새우잠을 잔지라 모두들 훈훈한 난방상태와 통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상태의 입김속에서 비록 5시간 정도밖에 자진 못하였어도 아주 상쾌하고 개운하였다. 아이들을 일으켜 깨우고 각자에게 맡겨진 짐을 챙기도록 했다. 맡은 짐을 정리하고 고양이 세수로 얼굴을 훔친 다음 짐을 보관소에 옮겨 놓았다. 식당으로 내려가 숙소가 제공하는 간단한 요깃거리로 아침을 지우고 역으로 출발했다. 요깃거리라는게 작은 카스테라 1개와 200미리 우유 하나가 전부였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 한그릇에 따뜻한 국과 김치 그리고 맛갈스런 반찬으로 배불리 아침을 먹는다는 호사는 무리라지만 그래도 한입에 다 들어가는 푸석한 카스테라 하나에 우유 한잔은 좀 심하다 싶었다.

 

밖은 아직 여명조차 찾아오질 않은 새벽 모습 그대로이고 뺨을 때리는 새벽 바람이 꽤 추위를 느끼게 하였다. 어제 저녁 역에서 발머하우스까지 걸어갈 때는 늦은 밤이고 초행길이라선지 무척 지루하다 싶었지만, 지금은 배낭하나 달랑 매고 낯익은 길을 가고 있어선지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이 보이질 않았다. 날씨가 맑지 않을  경우 융프라우에 올라가도 만년설을 이고 있는 고봉들과 그 아래 펼쳐진 백색의 설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여기를 여행 일정에 넣은 것은 융프라우요흐의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눈으로 직접 만년설에 덮인 아이거 빙벽을 보고 그 배경속에 우리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였다. 가면서 연신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반짝이는 별빛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희끗희끗 진눈개비가 이따금씩 날리는 것 같았다. 어찌됐든 역으로 가야했다. 역에 도착해서 알게 되었는데 어제 밤에는 오늘 아침에 내려온 길이 아니고 많이 우회하여 돌아갔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다. 눈 덮인 스위스의 조용하고 아담한 소도시 한적한 길을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오늘 하루의 일정을 엮어보았다.

 

날씨는 그때 가봐서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인터라켄 오스트역에서 오늘 저녁 베른에서 파리까지 타고 갈 프랑스 초고속 열차(TGV) 예약부터 맏아놔야 한다. 그리고 첫차를 타고 그린델발트를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철도역인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간다. 그곳에서 얼음궁전, 스핑크스 전망대를 관람하고 만년설을 밟아본 다음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와 다른 코스인 라우터부르트넌쪽으로 내려와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요기하고 역으로 나와 베른을 거쳐 한국에서 지금 한창 건설중인 고속철도 위를 달릴 TGV를 타고 파리로 입성하는 것이 오늘 하루의 일정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 기대에 부푼 일정이다. 물론 푸른 초원이 펼쳐진 뒤로 멀리 눈덮인 산이 우뚝 솟아있는 그런 풍광은 겨울이라 기대할 수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날씨가 맑아 스위스 겨울의 진면목이라도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 무엇보다도 간절하였다. 예까지 와서 그런 모습은 보지도 못하고 두툼한 구름 속에 가려진 모습만 보고 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2.  낭패 속에서 찾은 차선책

 

우선 유레일 패스를 제시하며 발권 창구에서 오늘 오후 파리까지 가는TGV를 예약을 요청하였다. 대략 50대 후반을 넘긴 듯한 중년의 아저씨가 양손의 검지 손가락만 이용하여 능숙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자판을 뚜드려가며 일하는 모습이 사뭇 부러운 생각마져 들었다. 한참을 창구 앞에서 예약이 완료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것저것 확인을 마친 역무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파리로 가는 오늘 오후의 모든 열차는 만석이라 예약이 불가능하단다.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 가지고 있던 당일의 전체 열차운행 시간표를 보여주며 다른 열차까지 조회해봐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이미 자기가 오늘 오후 12시 이후에 베른에서 파리로 가는 TGV를 모두 조회하였다면서 모니터를 내게 보였다. 정확 알길은 없지만 대충 화면에 보여지는 것을 보니 없는 것은 사실인듯 했다. 조회하는 동안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첫 기차를 타려고 차표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양보하다보니 우리는 첫 기차타는 것은 뒤로 미뤄할 할 판이었다.

잠시 역구내 한쪽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았다.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책이 TGV를 포기하고 다른 기차 편으로 파리에 가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니면 지금은 예약이 꽉 찬 상태이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선 움직이기면서 대안을 찾기로 하였다. 역구내를 나와보니 밖은 벌써 많이 밝아있었다. 융프라우 정상의 날씨상태를 짐작하기 위하여 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니 잔뜩 흐린 날씨와 이따금씩 흩뿌리는 진눈개비도 여전하였다. 지금 정상에 올라가봐야 구름에 꽉막혀 융프라우가 자랑하는 아이거 빙벽의 만년설과 알레취 빙하가 쓸려내려간 자국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 그린델발트까지만 올라가서 피르스트까지 이어져 있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시 창구로 다가가 파리로 갈 수 있는 다른 열차편을 의뢰하였으나 이번에 컴퓨터가 다운되어 조회가 안된단다. 그러면서 그린델발트에도 전산망이 있으니 거기서 다시한번 의뢰하여 보란다.

 

그린델발트까지 가는 열차안에서 여행의 흥미와 즐거움보다는 어떻게 하여 이같은 낭패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가 하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앞서 머리가 많이 복잡하였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짧게 잡은 일정 속에서 알차고 보람있게 보낼 요량으로 일일 단위의 일정을 다시 시간 단위로 쪼개서 체크포인트까지 세심하게 준비하였다. 어제까지는 일정상 차질이 전혀없이 오히려 계획에 없던 두오모 성당까지 가볼 수 있는 보너스까지 얻을 수 있었지 않았는가. 헌데 오늘은 첫단추부터 헝클어지고 있어 저으기 당황스럽웠다. 실은 어제 베네치아나 밀라노에서 예약을 마쳤어야 했다. 로마 테르미니에서 베네치아로 넘어가는 야간 열차를 예약할 때나 베네치아에서 스위로 가는 시살피노를 예약할 때 너무나 슆게 예약이 이루어져 방심한 것이 오늘의 화를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주말열차가 아니어서 좌석 여유가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오후에 파리로 가는 경우는 달랐다. 주말 스키여행온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오후인 오늘 오후 대부분 돌아가기 때문에 일찍 좌석예약이 마무리되었다는 역무원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어보였다.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시간적 여유없이 하나라도 더볼 요량으로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바삐 움직일 때 반드시 예약을 하였어야 한다는 후회도 밀려왔다. 넉넉한 여유를 부리듯 계곡과 능선을 바꾸어가며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는 그린델발트에 도착했다.

역구내 창구에 다가가 다시 예약을 의뢰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만석이라 예약이 불가능하단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열차편으로 파리에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다행이 여기는 창구가 4개나 마련되어 있어서 오랜 시간을 가지고 상의를 할 수 있었다. 역무원은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열심히 다른 기차편을 알아주었다. 인터라켄에서 베른을 경유하여 파리로 가는 모든 열차편은 예약이 이미 끝이난 상태이고 바젤을 거쳐가는 야간열차(Euro Night)는 좌석이 몇개 남아있단다. 만약 그 열차를 타게되면 우리는 다시 호스텔이 아닌 열차에서 잠을 자야하고, 예약된 호스텔에 오늘분 숙박비 결제까지 끝난 상태라 숙박비를 날려야 할 판이다. 아울러 유레일 패스로 TGV를 탈 경우 한사람당 5유로만 추가 부담하는 되는데 Euro Night를 탈 경우 한사람당 21유로라는 거금을 추가로 지불하여야 하는 손실을 감수하여야 한다. 이래저래 손실이 커져가더라도 이제는  더이상 예약을 미룰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고 유일책만 남아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예약을 마치고 파리의 숙소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며 금일분 숙박비 환불을 요청하였으나 24시간 전에 통보할 경우에만 환불이 가능하다는 답변만 얻고 말았다.

 

 

3.  융프라우는 우리를 외면치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찌뿌듯한 구름이 한껏 아래로 내려앉아 있었다. 올라올 때 자주 내리던 진눈개비는 더이상 모습을 보이질 않았고, 행여 융프라우 봉우리가 볼일까 하는 기대감에 하늘 저 위쪽을 올려다 보았으나 눈에 차는 것은 구름이 전부였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까 맘 먹은 대로 리프트를 타고 피르스트(First)를 올라 갈 것인가 아니면 구름만 볼지라도 융프라우에 올라갈 것인가 결정을 못하고 스키 인파로 넘쳐나는 스위스의 조금마한 산촌도시의 아스팔트위에 서서 고즈넉히 마을 아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역무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융프라우의 지금 날씨 상태가 여기서 보여지고 있는 상태 그대로 인지를 물어보고 결정하키로 하였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역무원이 우리가 있는 곳 가까이 까지 다가오자 지금 융프라우 날씨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를 보고 따라오란다. 역구내로 데리고 간 그는 구내 한켠에 걸려있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봉우리가 화면 가득히 들어있었다. 거기엔 구름 한점 찾아낼 수 없었다.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저 모니터가 지금 융프라우 정상의 날씨를 Real Time으로 중계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오늘 날씨는 Very Wonderful & great beautiful이란다.

 이런! 지금까지 우리는 아래에서 보이는 날씨만 가지고 연신 헛물만 켜고 있었던 것이다. 주저할 것 없이 창구로 쫒아가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왕복티켓을 구입하여 대기 중이던 산악열차에 올랐다. 조금있자 철로 가운데에 기어가 장착되어 20~30도 정도의 경사진 철로 위를 힘차게 올라가고 있었다. 파리로 가는 차편 예약도 마쳤고, 우려했던 산 정상의 날씨도 죽여준다고 하니 새벽부터 뭔가가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개운치 않던 마음이 한꺼번에 활짝 펴졌다. 열차는 고도를 서서히 높여가며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창밖에다 시선을 고정한채 차장으로 보이는 두껍게 눈을 덮고있는 마을과 그 마을 사이에 설치된 리프트들과 슬로프 위를 힘차게 활강하며 내려가는 스키어를 바라보았다. 고도 1000m 정도되는  그린델발트 (Grildelwald)에서 한라산 보다 약간 높은 클라이너 샤이데크(Kleine Scheidegg)까지 30분 정도의 시간만에 올라와 우리를 내려 주었다. 우리와 같은 관광객 차림은 동양계 뿐이고 대부분의 승객은 스키를 동반하고 올라온 스키어들이었다. 여기서 열차를 갈아타야 융프라우요흐(Jungfrauyoch)로 올라갈 수 있다. 열차에서 내려 갈아탈 열차를 찾고 있는데 라우터브른넌(Lauerbrunnen)에서 우리와 같은 열차가 올라왔다.

아돌프 구에르첼러라는 엔지니어가 1912년 설계를 시작하여 16년만에 완성한 철도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3,454m에 위치한 융프라우요흐역까지 운행한다. 열차는 출발하자마자 우리를 터널 속으로 집어넣었다. 처음2㎞정도 산악지역을 뚫고 가더니 이내 암반을 뚫어서 만든 터널 속으로 빠져들었다. 암반터널을 한참  오르다 말고 열차가 멈춰섰다. 사람들이 짐은 놔둔채 우르르 열차를 내려 어디론가 몰려갔다. 잠깐 내려서 뚫린 공간사이로 펼져진 알프스의 전경을 내다볼 수 있게 배려한 멈춤이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알프스에서의 파노라마 서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구름 아래에 점같이 박혀있는 그린델발트의 집들이 보이고 구름 위로는 희다 못해 시린 눈을 이고 있는 준봉들이 내눈을 압도하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대략 5분 정도의 짬을 주고 열차는 두번을 정차한 다음 종착역인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안내판에 적혀있는 대로 우선 기념관과 식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터널처럼 생긴 길을 몇걸음 옮기자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와 함께 가슴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호흡이 가빠왔다. 여행자료에서 읽은 기억이 있긴 해도 막성 당하고 보니 장난이 아닌성 싶다. 몇걸음을 옮기다가 아이들을 돌아봤다. 녀석들은 더 심한 듯 얼굴이 헬쓱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같이 보였다. 괞찮냐고 물었는데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젓는다. 메인 홀에서 잠시 앉아있는데 다른 관광객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안에서만 경치를 보게 되어있는 줄 알고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지도 않았었다. 그들을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선지 호흡곤란 증세가 좀 덜하였다. 가뿐 숨을 돌리고 나서 우리는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 하는 탄성밖에는 더이상 표현키 어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그 광경마져 제대로 보지 못하게 푸르다 못해 시리기까지 하늘과 한층 낮게 떠 있는 태양이 쏟아내는 강렬한 햇살을 되뿜는 만년설이 이내 눈을 감게 만들었다. 지금 이 광경을 말로 어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늘은 푸르디 푸른 물을 쭉 짜낼 듯이 한점의 구름도 없이 청청함 그대로이고 아이거 봉우리를 덮고 있는 눈은 흰색만이 아니었다. 흰색 밑으로 옥에서 은은히 감도는 청자빛을 엷게 물들인 듯한 태초의 신비스런 색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서있는 둔덕아래로는 알레취 빙하가 쓸고 내려간 듯 U자형의 끝모를 계곡이 뻗어내려가 있고 그 계곡 중간중간에 어제 저녁 흘러내린 것같은 눈덩이들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태고의 자연 그 위에 지금 우리가 서 있구나 싶다. 가빴던 호흡도 잊은채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하여 위치를 잡아주고 있는데 진아가 코피를 쏟기 시작하였다. 얼른 휴지로 응급처치를 해주고 눈위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데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눈위로 뚝뚝 떨어진 핏자욱이 보였다. 잠시 아이 걱정보다는 그 핏자욱이 왜이리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를 일이다. 사진발을 위해 아이들에게 눈을 크게 뜨도록 주문해도 도저히 할 수 없단다. 기왕 담아갈 사진인데 좀 더 멋지게 찍기위해 다른 여행객에게 잠시 선그라스를 빌렸다.

       

다시 전망대로 돌아와 철도 건설 당시의 모습을 전시한 기념관을 돌아보고 얼음궁전이 만들어져 있는 곳을 찾았다. 얼음궁전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좆아 가보았지만 아무런 안내도 없이 폐쇄된 듯 입구가 막혀 있었다. 얼음궁전을 포기하고 터널로 된 긴 길을 따라 스핑크스로 올라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다시 아까처럼 고산증세가 나타나 걷다가 쉬기를 여러차례 하고서야 스핑크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략500m도 안되는 거리지만 20분은 족히 걸었나보다. 기상관측소로 운영되는 스핑크스는 지상에서 약 3,550m에 위치해 있었다. 밖에 마련된 전망대로 나가 다시한번 융프라우의 설경에 젖어보려 하였지만 배도 고프고 가슴이 답답하여 사진 몇장 건지고 내려왔다.

  

전망대로 걸어서 되돌아오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산증세가 괴롭혔다. 배낭족들의 여행기나 관련 서적에 적힌 여행팁에 나온대로 간이 식당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대략 오천원 정도하는 컵라면과 빵을 먹고나니 몸이 나른하고 왠지 으실으실해져왔다. 몸도 좀 추스리고 여유로운 휴식을 가질 양으로 의자에 길게 기대어 눈을 붙였다. 어차피 오늘밤 9시까지는 인터라켄에서 머물러야 하므로 시간적 여유가 넉넉한 상태였다. 하지만 편히 쉴만한 몸상태가 아니었다. 어질어질한 머리와 두 어깨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으실으실한 것이 몸살이 찾아온 모양이다. 로마를 떠나던 날 저녁부터 어제 저녁까지 먹거리로 부실했고 아울러 잠자리 마져 포근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온의 편차마져 심하다 보니 몸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나보다. 그래도 억지로 쉴 요량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았다. 깜빡 졸은 듯한데 한 10분 정도 잔 모양이다. 더 이상 눈을 붙여 휴식 갖기를 포기하고 내려가는 열차 기간을 알아보았다. 대략 30분 정도 기다리면 되었다.

 

4.  역시 조제약이 그래도 낫지

  하산하는 열차를 타고 다시 클라이네 샤이데크로 내려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질어질하던 증상은 말끔히 가셔 한결 숨쉬기가 수월하였다. 역에서 다시 융프라우요흐를 올려다 보았다. 오후가 되어선지 바람에 은빛 눈가루가 날려 시야가 약간 뿌였게 흐려졌다. 아침에 올려다 볼때와는 청량함이 많이 떨어졌다. 반대쪽 봉우리는 융프라우에 비해서 훨씬 높이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3000m는 족히 될터인데도 정상 못미쳐까지 리프트가 가설되어 있고 그곳에서 힘차게 스키를 지치며 내려오는 많은 무리가 보였다. 온천지가 흰색 일색인 설원으로 뒤덮여 있는 이곳에 스키와는 동떨어진 복장으로 단지 융프라우를 보기 위하여 올라온 우리와는 대조적인 그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우리 처지가 외계에서 날아온 이방인이란 느낌이 들었다. 경사도 상당한 슬로프인데 능숙하게 내려오고 있는 저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스키를 탈 계획이 여행일정에 들어 있지 않다면 굳이 겨울에는 이곳에 오는 것이 어색하겠다 싶었다.    

 

그린델발트를 거쳐 숙소까지 오는 동안 오한이 들은 것 같이 온몸에 한기가 칭칭 감고 있다. 어깨, 무릎 등 여기저기에서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것 같고, 머리는 겉과 속에 분리되어 정신없이 흔들리는 같아 차창으로 지나가는 경치고 뭐고 다 귀찮아 웅크린 상태에서 벽에 기댄채 잠을 청했다. 며칠동안 잠도 부족하고 시간 안배없이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하다보니 몸이 고장났던 것일까..몸은 그래도 아이들이 걱정되어 바라보니 녀석들은 내가 걱정되는 듯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에서 가져온 조제약을 입에 털어넣고 저녁을 준비해 주었다. 조제약은 한국에서 감기 들었을 때 사다 놓고 복용하다 남은 것을 가져온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식량은 이제 남아있는 것이 햇반 세개와 미역국 두봉지가 다였다. 정성껏 하여 미역국에 햇반으로 저녁을 차려주고 내 몫으로는 파스타 요리 두봉지를 사 대충 그림을 보면서 만들어 보았다. 몸 상태가 개운치 않은 상태라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볼 수 없다보니 제대로 된 파스타 요리가 되지 않았다. 대충 요기한다치고 맛은 포기한 채로 먹고 있는데 아이들이 시원하게 마시라고 미역국을 남겨놓았다. 녀석들 마음 씀씀이가 나보다 낫다 싶었다. 저녁을 마친뒤 아이들에게는 그동안 밀린 여행 소감을 쓰도록 하고 나는 몸을 추스릴 겸해서 식탁에 담요를 두르고 누었다.

 

대략 한시간 정도 엎드린 채 잠을 잔것 같았다. 담요를 걷고 일어나니 머리도 개운하고 몸도 한기가 싹 가셔선지 가뿐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두녀석이 식당 한 켠에 놓여있는 막대축구대에서 신나게 오락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리를 해온 일정인데도 전혀 힘들거나 지쳐하는 기색이 전혀없이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 무척 대견스러워 보였다. 아직은 바젤로 가는 열차 시각까지는 넉넉히 남아있어 호스텔에 마련된 매점에서 가서 기념이 될 만한 것을 골라 샀다. 호스텔 마크가 들어있는 티셔츠를 아이들을 위해 샀고 지인들에게 줄 빅토리녹스 칼도 몇개 샀다. 밖으로 나오자 벌써 땅거미가 내려안은지 꽤 오래되었나 보다.

 

숙소를 나와 다시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을 나섰다. 결코 가깝다고 할 수 없는 이 길을 어제 오늘에 걸쳐 4번째가 걷고 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고 오고가는 차도 사람도 무척 드물었다. 나는 핸드캐리를 끌고 갔고 아이들은 각각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스위스의 조그만 산골 도시를 걷고 있다. 이제 만 하루의 일정인 스위스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파리로 가고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 오늘 하루가 우리의 여정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웠고 힘들었고 후회되고 낭비스러운 것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제 베네치아나 밀라노에서 파리행 TGV예약만 제대로 해두었더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짙게배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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