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네치아 아침이 열리고 있다.
어제저녁 아이들과 쿠셋 안에서 덜컹거리는 진동을 느끼며 열차가 출발하는구나 한 것 같은데 이틀동안 이어진 로마투어에서 강행군을 한 탓인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곤한 잠에 떨어졌던 것 같다. 호텔이나 호스텔같은 편한 잠자리가 아니건만 개운한 몸기운을 추스려 눈을 뜬 것은 열차가 베네치아 한가운데 있는 산타루치아역을 한정거장 남겨둔Venezia Mestre역에 텅하고 정차하면서 생기는 순간적인 충격을 받고나서였다. 대략 5시반 정도의 시각이라 해가 떠오를려면 아직도 한두시간은 족히 남아있을 터였다. 밖으로 나와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멀리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림짐작으로 저기가 베네치아구나 하면서 말로만 들어오던 물위의 도시에 우리가 다가서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설레임이 가슴을 흔들고 있었다. 이 역에서 왜이리 오랬동안 머물러있나 싶은 짜증 속에서 어서 움직이기를 고대하였다.
열차는 긴다리를 건너고 있는지 규칙적인 울림음을 내면서 우리를 베네치아로 데려가고 있었다. 객차 역무원이 어제 저녁 회수해간 여권과 유레일패스를 돌려주면서 다음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알려준다. 쿠셋 안에 준비된 설치된 세면대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아이들에게 내릴 채비를 하라고 서둘렀다. 녀석들도 세상모르게 잤는지 무척이나 밝고 환한 얼굴로 각자의 배낭을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열차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산타루치아 역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고 열차에서 내려 다시한번 각자의 짐을 확인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여명 속에 고이 잠든 새벽 5시 50분이었다.
오늘은 반나절을 베네치아 투어하고 오후에는 여기서 다시 열차를 이용하여 Swiss Interlaken으로 가는 일정이다. 로마에서와는 달리 여기는 가이드 없이 우리가 직접 준비한 일정대로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다소 여행의 깊이가 덜할 지도 모른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련해온 베네치아에 대한 설명과 여행 안내 책자를 들고 짐 보관소로 갔다.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안전을 위해서Coin Locker보다는 유인보관소에 맡기기로 하였다. 역구내를 가로질러 앞에 있는 광장으로 내려오니 아직도 여명이 밝아올려면 꽤나 시간이 남아있는 시간이다. 역 광장과 맞닿아 있는 버스정거장이 아니고 배(Vaporetto,수상버스)정거장에 가 산마르코 성당까지 가는 배편 시각을 알아보니 아직 1시간 이상이 남아있어 다시 역구내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와 빵과 우유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우리 테이블 옆에는 어제 저녁 플랫폼에서 만났던 아주머니 가족들이 우리처럼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들 중 한가족은 이태리에 이민와서 살고 있고 다른 한가족은 한국에서 여행차 왔단다.
Vaporetto 뱃머리에 앉아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아들과 |
아직 잠이 덜 깬 딸 |
어느덧 밖이 훤히 밝아졌고 광장을 가로질러 분주히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수상버스 (Vaporetto)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창구에 다다가 산마르코성당까지 가는 배의 노선번호와 가격을 알아보았다. 이태리어로 노선번호와 가격이 쓰여져 있어 눈치코치로 해도 잘 알아볼 수가 없어서 이민 와 있다는 가족에게 왕복티켓이 얼마인지를 물어봐 달라고 부탁해 일인당 5.6유로를 주고 세장을 사서 노선번호 1번 Vaporetto승선장으로 갔다. 얼마되지 않아 배가 도착하고 아이들과 함께 맨 앞에 마련된 좌석에 앉았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고 늦은 겨울 날씨라서 꽤 쌀쌀한 바람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배의 속도에 세기를 더해가며 볼에 와 부딪혔다.
여기서 베네치아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산마르코광장까지는 S자 모양의 넓은 물길이 이어져 있고 산마르코광장 앞부터는 바다와 연해있다. 일반적인 육상도시에 비유하면 이 물길을 도심을 관통하는 간선도로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Vaporetto는 산타루치아 역이 시발이 되어 산마르코광장, 리도섬, 무라노 섬과 기타의 구간으로 나뉘어 노선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같은 노선일지라도 도시고속버스처럼 주요 승선장만 서는 배가 있고 각 승선장을 모두서는 일반 시내버스처럼 운행하는 배도 있었다. 우리가 지금 타고 가는 1번 노선 배는 중간중간 주요 승선장만 경유하여 가고있다. 물론 요금은 같았다.
2. 물의도시, 이태리의 자존심, 배네치아
수상버스 뱃머리에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스위스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와 간단한 수인사도 나누다 보니 어느덧 San Marco광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려 바다와 연해있는 넓은 도로를 따라 배가 가던 방향으로 쭉 걸어갔다. 날씨는 구름 한점없는 우라니라의 가을날씨 만큼이나 청명하였으나 기온이 받쳐주지 않으니 계속 걸어가기가 부담스러워 선착장 한켠에 조성된 넒은 광장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워낙 햇볕이 강렬하여 한기를 녹일 수 있었다. 배낭에서 준비한 여행자료를 꺼내어 아이들에게 간단히 설명도 하고 읽어보도록 하면서 대략적인 투어코스를 잡았다. 쉬고 있는 이곳에서 다시 San Marco광장으로 되돌아가면서 탄식의 다리 –> 광장과 성당 -> 성당에 마련된 박물관 –>두칼레 궁전 -> 종탑 전망대 -> 리알토 다리 -> 산타루치아 역 ->점심 -> 스위스로 이동하는 순서로 정하였다.
첫번째 투어코스인 탄식의 다리를 보기위하여 오던 길을 되짚어 가는데 한무리의 일본인 관광객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자그마한 다리위에 멈춰섰다. 인솔자가 뭔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하는 곳을 바라보니 사진으로 익혀둔 탄식의 다리였다. 아까 이 곳을 지나쳤을 때는 추운에 떤 몸을 녹이느라 주변에 눈길을 주지 않아 발견치 못한 듯했다. 두칼레 궁(Palazzo Ducale)과 궁 뒤편에 있는 감옥과 처형장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이름이 붙여진 것은 1600년 경 대평의원회에서 재판을 받아 형을 선고받은 죄인들이 감옥으로 가는 이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창문으로 바깥 세계를 바라보며 탄식을 한데서 다리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궁전과 감옥사이를 연결하는 구름다리처럼 4층 정도 높이에 밖을 볼 수 없게 지붕과 벽까지 씌워져 있었다.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얻고 두칼레 궁을 끼고 돌아가 광장으로 들어섰다.
광장으로 돌아들어서자면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과 산 마르코 성당을 지나야 한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 성당과 궁전은 로마에서 접했던 궁전이나 성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선 성당은 건축양식이 터어키나 모스크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둥근 돔 형식의 비잔틴 양식에 서양식의 벽과 기둥을 갖춘 동서양의 건축기법이 융합되어 축성된 것이다. 아이들과 성당내부를 들어가 천장에 그려진 성화를 둘러본 다음 오른켠에 마련된 보물실 입장료를 끊고 기다렸다. 여행 책자를 통해 이 보물실에 예수가 십자가에 박힐 당시의 가시관과 못 등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본지라 예까지 와서 그걸 보지않고 가기가 서운하였다. 두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는데 규모가 큰 전시실은 십자군 전쟁 당시의 터어키 일원에서 수집한 보물들을 전시되어 있고, 작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시관에는 우리가 보고자 했던 가시와 못 그리고 예수와 관련된 성물들이 소중이 간직되어 있었다. 큰 전시실을 대충 둘러보고 작은 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겨 가시와 못을 찾아 보았으나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입구의 안내자에게 물어보니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리상자에 전시된 철기시대 유물 조각같은 것이 보였다. 사실 로마나 이곳 베니스의 유적과 유물전시관들을 돌아볼 때 가장 큰 애로가 그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내용을 적어놓은 안내판이나 명판을 보기 힘들다. 더우기 있어도 영어가 아닌 자국어로 된 것만 있어 제대로 감상하려면 반드시 가이드를 동행하여야지만 가능하다 싶었다.
반 실망을 받고서 보물실을 나와 광장에서 아이들과 기념으로 두칼레 궁전, 청동상, 흰색 대리석 열주로 회랑들을 배경으로 사진 몇 커트 찍었다. 해가 하늘 가운데로 이동해가면서 체감온도가 조금 올라가 웅크리고 다니던 어깨를 조금은 벌릴 수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없는 티없이 맑고 푸른 빛을 가득히 담은 마치 하늘호수같은 청명한 베네치아의 겨울하늘이었다. 성당과 궁전 맞은편의 박물관 전망대에 아이들만 올려보내고 혼자서 회랑 아래에 앉아 자판기에서 뽑은 카푸치노 한잔을 놓고 잠시동안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관광객의 손에 들려있는 먹거리를 연신 노리며 날개짓 해대는 한무리 비둘기떼와 그 사이를 재밌어 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아이들이 내려왔다. 녀석들이 전망대에서 직접 찍었다는 사진을 되돌려보면서 내가 찍은 것이 더 멋있게 나왔다고 우겨댄다. 수상버스 정류장에서 건너다 보이는 리도섬을 뒤로 하고 곤도라가 여유로이 관광객을 싣고 유유자적하는 많은 수로들을 가로질러 리알토 다리로 향했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산타루치아 역으로 걸어가다보면 중간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이다리까지 아이들과 좁게 난 골목길로 이동하였다. 좁은 골목길과 함께 거미줄처럼 나 있는 운하 위에 또한 수없이 떠다니는 곤도라는 분명 베네치아의 상징일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베네치아의 명물 중에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이탈리아말로 ‘흔들리다’라는 뜻을 가진 곤돌라(Gondola)이다. 곤돌라의 기원과 관련하여 재미 있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베네치아가 오적의 침입을 받고 도시의 모든 처녀들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에 신부 감을 잃어 버린 베네치아청년들은 공모 끝에 처녀들을 되찾기 위한 계략을 꾸며 작은 배를 만들어 야밤에 소리없이 기습하여 처녀들을 되찾아 오게 된다. 그들은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곤돌라를 보면 모두 검은 색으로 도색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중요한 이유가 있다. A.D.6세기에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로 온 베네치아는 고통 속에 나날이 늘어가는 시체들을 치워야 했다. 이때 곤돌라를 검은 색으로 칠하여 조의를 표하였는데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산타루치아 역 앞에서 중심지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에 이르는 길이 약 3km에 달하는 대운하를 지나다 보면 많은 다리들을 통과하게 되는 데 운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리알토 다리(Ponte di Rialto)이다. 이 다리는 안토니오 다 뽄테(Antonio da Ponte)가 1588년에 시작해서 1592년에 완성하는 데 당시의 군 선이 드나들기 좋도록 설계하였다고 한다. 야만 족의 침입을 피해 말라모꼬(Malamacco) 사람들이 섬으로 도망할 때 그들을 인도한 것은 십자가를 입에 문 한 마리의 비둘기였다고 한다. 그 비둘기가 머물었던 곳이 바로 이 다리의 부근이었다고 한다. 바로 베네치아가 시작된 곳이다. 다리 주위에는 일용잡화와 야채, 생선시장이 발달한 베네치아의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였는데 우리가 도착하여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해도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있어선지 짬을 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3. 밀라노로 가자..
바포레또 왕복티켓을 이용하여 산타루치아역으로 돌아와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로 가는 열차편 시간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기왕 여기까지 온거 예정에 없던 밀라노를 여정에 긴급추가하기로 하였다. 밀라노에 가서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성당인 두오모성당을 돌아보기로 작정하니 20분 뒤에 출발하는 밀라노행 열차를 타야했다. 우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줘 점심 요기꺼리를 사게하고 나는 밀라노에서 스위스 인터라켄까지 가는 특급열차 시살피노를 예약하기 위하여 매표 창구에 줄을 섰다. 연신 시계를 들여다 보면서 늘어선 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시살피노를 예약권을 끊고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이번엔 아이들이 오지를 않는다. 여러가지 우려스런 상상을 하며 길이 엇갈릴까봐 카페테리아로 가보지도 못하고 내내 서있는 자리에서 녀석들을 기다리며 열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을 보니 10분이 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침내 아이들이 햄버거와 샌드위치, 음료수를 손에 들고 나에게로 막 뛰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을 대동하고 부리나케 새벽에 짐을 맡겨놓은 유인로커에 달려가 돌려받고 나서 밀라노행 열차가 출발하는 플랫폼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유레일 패스로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열차이므로 우선 맨 가까운 칸으로 올라탔다.
올라타고 좀 있으니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다음 객실 내부를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콤파트먼트 타입의 객실에 자리를 잡고 짐을 다시 확인하여보았다. 잃어버리거나 놓고 온 것은 없었다. 가뿐 숨을 돌리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아이들이 사온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펼쳐놓고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우리나라 열차는 대부분 좌석이 나란이 있는 객차로 이루어져 있고 다만 의자의 재질과 푸근함 그리고 좌석과 입석이 구분되는 것이 차이가 있으나 유럽의 열차는 여러나라의 국경을 우리나라의 도 경계 넘나들듯이 연결되어 있는 철도망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타고있는 객차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마주보고 배열되어 있고 방처럼 칸막이로 막혀 있으며 통로에서 들어오는데는 유리로 된 출입문이 있으며 의자 뒤에는 캐비넷까지 달려있었다. 이름하여 콤파트먼트 타입의 객차인데 유레일 패스 소지자에겐 추가비용없이 탈수 있었다. 안락하고 넉넉한 의자와 우리만이 누릴 수있는 공간까지 배려되 객실 안에서 우리나라에선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겐 그동안 밀린 기행문을 쓰도록하고 나는 그동안 쓴 영수증을 분류하여 비용을 정리한 뒤 차장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이탈리아 북부지역의 풍경을 감상하였다.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가는 이 노선은 중간 기착지로 전에 두번정도 출장차 방문한적이 있는 볼로냐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절한 사랑이 묻혀있는 모데나를 거쳐가게 된다. 롬바르디아의 드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달리는 동안 끝모르게 펼쳐져 있는 평원의 저 끝자락이 겨울 오후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힘에 가물가물거리며 희미한 지평선을 긋고 있었다. 정말 넓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한편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길쭉한 반도 지형 속에 스위스의 알프스지붕이 기까이에 있을 것 같은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처럼 끝없는 평원을 선사하였을까 하는 부러움이 앞섰다. 그 넓은 평원은 대부분 감자와 밀의 경작지처럼 보였다. 우리와 달리 이들의 주식이 밀과 감자이기에 논보다는 밭의 형태로 개간이 되어 펼쳐져 있었다. 몇년전 업무차 중국 상하이로 출장간 길에 상하이에서 쑤줘우로 반나절 여행을 떠났을적 생각이 떠올랐다. 상하이에서 쑤줘우까지 자동차로 약 2시간 가량 달렸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논과 논사이에 조성된 시골 마을밖에 보이질 않았다. 작년 초겨울에 태국의 방콕과 파타야 사이에 펼쳐진 이와같은 평야를 볼 수있었다 여행을 하면 꼭 보고싶어한 것이 이같은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는 평원이었다. 딱이 들어맞는 표현을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가슴이 탁 트이고 웬지 모를 시원함과 자유로움을 안겨주는 것에 도취할 수 있어서 일까…
4. 두오모 성당은 지금 공사중…
족히 3세간 가량을 달려 마침내 밀라노에 도착했다. 역 구내에 있는 유인 로커에 큰 캐리어만 맡기고 지하철로 두오모성당으로 달려갔다. 이태리의 지하철은 한번 개찰하면 75분에서 90분정도 사용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동안에는 여러번 타도 무방하다. 결국 우리는 한시간정도 두오모 성당에서 구경할 수있는 시간이 허용된 샘이다. 넉넉한 시간이 가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불후의 걸작 최후의 만찬이 걸려있는 미술관도 보고싶었으나 대략 2시간 밖에 여유가 없어서 이곳만 보고 가기로 했다. 지하철역 두오모를 출구를 빠져나와 광장에 올라서는 순간 붕대를 감고있는 듯한 거대한 건물이 떡 버티고 서있었는데 바로 공사중인 두오모 성당이었다. 성당 전면부에 쌓여있는 먼지와 때를 벗겨내는 공사를 하고 있는 것같았다. 측면과 후면은 이미 공사를 마친 다음인것 처럼 깨끗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수많은 첨탑과 그 위에 서있는 그리스도 성인들이 서있었다. 워낙 높이 서있어서 그 표정과 형태들을 확연히 바라볼 수는 없고 대략적인 윤곽들만 볼 수 있었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평일인데도 몰려나와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 서있는 엠마뉴엘 2세의 동상을 지나 비둘기들이 떼지어 몰려있는데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비둘기 먹이가 든 봉지를 들고 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진만이 손에 그 먹이를 한움쿰 덜어주었다. 순간 비둘기들이 일제히 떼지어 달려들어 손에 든 먹이를 쪼아대기 시작하였다. 그 사내는 그것을 즐기려는 듯이 진만이 손을 잡고 높이 쳐들었고 손바닥을 쪼아대는 비둘기들 때문에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 사내의 손아귀에서 도망치려하였다. 이를 보고 재밌어 하는 진아에게 이번엔 다른 사내가 다가와 진만이와 같은 장난을 반복했다. 손에 담겨있던 먹이가 다 소진되고 비둘기떼가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자 이 두 사내들이 내게로 다가와 돈을 요구했다. 비둘기 먹이값을 내란다. 나는 산적이 없으니 줄수 없다고 하고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났다. 집요하게 요구하면 돈을 주려하였지만 내 표정이 아무리 졸라도 줄성 싶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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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밖을 한바퀴 돌고 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만큼이나 웅장한 규모에 유리창마다 모자이크 성화가 그려져 있고 어른 팔로 네번은 족히 감아야 할 정도의 기둥들이 2열 종대로 길게 늘러서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각 기둥들의 위 부분에 성인들의 조각상을 부조되어 붙어있고 자연 채광이라서 안은 약간 어두운 감을 받았으나 오히려 내려앉은 조도가 엄숙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유럽을 여행할때 대표적인 건축물로 어느 나라를 가나 성당 건축물이 그 대표격을 차지 하듯이 밀라노에도 두오모가 그자릴 빛내주고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고있는데 진아가 또 코피를 쏟기 시작하였다. 내리 3일동안의 강행군에 피로가 겹친 탓일 것이다. 얼른 휴지로 응급조치를 하고 다른 데 아픈데는 없느냐고 하니 괜찮다고 한다. 성전을 배경으로 아이들 모습을 담고나서 밖으로 나왔다. 해가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기를 더하다보니 체감온도가 여기 올때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스위스로 가는 열차시간이 얼추 30분정도 남긴 시각에 우리는 밀라노역으로 되돌아왔다. 도착하였을 때는 느끼지 못하였지만 역사가 유럽의 여느 궁성처럼 무척이나 웅장하고 고색창연하였다. 왕궁이나 궁궐같이 대리석으로 축조한 역사가 서쪽으로 많이 기운 엷은 햇살에 노을처럼 물들어 있었다. 역사 앞에는 넓은 광장과 커다란 분수대가 마련되어 있고 광장여기저기엔 롤러보드를 즐기는 아이들, 이야기 꽃을 피우고 학생들, 한가로이 저문 햇살을 쬐고 있는 노인들이 보였다.
대충 한국시간을 따져보니 밤11시반 쯤 된 것같다. 한국에 혼자 남아있는 아내에게 아직까지 전화 한통 하지 못하였다. 국제 전화카드에 적혀있는 번호로는 연결이 되지않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 아침에 만난 젊은 친구들이 알려준 번호 덕분에 드디어 아내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우리만 오게되어 전화하기가 많이 미안하여 간단한 안부만 묻고 아이들을 바꾸어 주었다. 차례로 통화를 마친 다음 차안에서 먹을 것을 진만이에게 사오게 하고 나는 맡긴 짐을 되찾아 스위스로 우리를 데려다 줄 시살피노(Cisalpino)에 올랐다. 시살피노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사이를 운행하는 특급열차로서 반드시 예약을 하여야만 탈 수 있다. 우리는 이 열차로 밀라노에서 출발하여 인터라켄 인접역인 스피츠까지 이동한다. 객실 안에는 전기 콘센트까지 구비되어 있어 디카 배터리도 충전하거나 노트북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또한 역무원이 다니면서 신문을 나눠주거나 사탕 혹은 젤리등을 나눠 주기도 한다. 이제 로마에서 보낸 이틀과 베네치아와 밀라노를 경유한 오늘까지 이탈리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융프라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스위스로 건너갈 시간이 되었다.
5. 알프 소녀와 만년설의 나라 스위스로 우리는 가고 있다.
밀라노를 떠난지 얼마 않있어 밖은 벌써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저녁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5시만 넘으면 땅거미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차장 밖으로 펼쳐질 알프스의 파노라마와 하이디가 손을 흔들어줄 것같은 아름다운 시골 마을을 보고싶었으나 그 기대를 접어야 했다. 아이들은 밖이 어두어지기가 무섭게 잠에 곯아떨어졌다. 녀석들은 무척이나 피곤한가 보다. 어림작으로 스위스의 접경지역을 달리는 것 같아 밖을 내다보니 이름을 알 수없는 넓은 호수가 열차와 함께 달리는 듯했다. 지도를 열어 살펴보았지만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으나 충주호보다도 훨씬 넓고 커보였다. 호수 옆을 비껴가는 사이 깜빡 잠이 들었던 듯싶었다. 얼른 시계를 보니 아직 도착 예정시간인 저녁 7시 50분까지 한시간 이상 남아있었다.
아까까진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에는 멀리 마을 앞을 밝히고 있는 불빛만이 지나갈 뿐 보여지는 것은 어둠밖엔 없었던 것 같았는데 더이상 졸면 안되겠다 싶어 차장 밖을 다시 두리번 거리니 하늘에 반달이 떠있고 대지 위엔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벌써 스위스를 달리고 있던 것이다. 오늘 오후에 밀라노로 오면서 보아왔던 대평원은 간데없고, 산과 계곡 그리고 터널을 수없이 반복하며 차장을 지나치고 있었다. 낮에 여기를 달려가면 정말이지 기막힌 풍경이 우리를 압도할 것만 같은 모습이 달빛과 그 반사된 눈빛사이에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정말이지 스위스는 밤에 이동하지 말아야할 것같다.
스피츠에 도착할 무렵이 되어갈쯤 아이들을 깨웠다. 두껍게 덮혀있는 눈과 한겨울의 밤은 추위를 절로 느끼게했다. 단단히 아이들의 옷을 여며주고 선반에서 짐을 미리 내려 놓았다. 스피츠에 내리자 플랫폼 반대편에 인터라켄(Interlaken Ost)으로 가는 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살피노와는 격이 한참 떨어지는 열차에 올라보니 얼굴빛이 우리와같은 젊은이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어보니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배낭여행 중인듯 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한시간 남짓 달려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약도로 위치를 파악한 다음 서둘러 예약해둔 Balmer House로 걸어갔다. 약도상에는 가까워보였으나 오랜시간을 걸었던 것같은데 아이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잘 따라주었다. 걸어가면서 진아가 자게 될 숙소는 난방이 제대로 될까를 걱정하였다. 로마에서 혼쭐이나선지 걱정이 되나보다.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배정된 방에서 들어서자 진아가 환한 얼굴로 웃는다. 걱정하였던 난방이 아주 마음에 들었나 보다. 라면과 햇반으로 저녁을 지우고 샤워를 마쳤다. 내일 아침엔 6시 30분 첫차를 타고 융프라우에 올라가야하기에 일찍자도록 하였다. 통나무로 만든 숙소라서 그런지 무척이나 아늑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것저것 정리를 마치고 나도 잠자리에 들었다. 스위스에 보낼 딱 하루의 밤을 잠으로 보내기엔 아까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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