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문화유산 이야기/21. 궁궐이야기

[한양도성] 2.서울의 궁궐

학이시습지야 2016. 3. 1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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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궐이란?

  궁궐이란 왕이 왕실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생활하고 정사를 돌보는 곳이다. 궁궐은 왕과 왕실 가족이 기거하는 궁(宮)과 출입문 좌우에 설치하였던 망루를 뜻하는 궐(闕)이 합쳐져서 만든 말이다. 서양을 대표하는 왕이나 황제 살거나 살았던 궁인 버킹검궁, 베르사이유궁, 벨베데레왕궁은 단일 건물안에 다양한 기능을 하는 방으로 되어있는 데 반해 우리의 궁궐은 각각의 기능을 하는 전각들이 궁궐 안에 자리하고 있다.   


2. 궁궐을 짓는 원리 

  궁궐을 지을 때 일정한 원리에 따른다.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전조후침(前朝後寢), 즉 공식적인 행사를 하는 곳은 궁궐 앞쪽에, 생활을 하는 곳은 뒤쪽에 두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궁궐은 외전, 내전, 후원영역으로 구분하게 된다.

 

  외전은 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보고 국가적인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다. 한나라의 책임자로서 국사를 관장하는 공간으로 궁궐 건물 중 가장 위엄있고 큰 건물인 정전, 임금의 사무실격인 편전, 이를 보좌하는 궐내각사가 이에 속하게 된다. 내전은 왕과 왕비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왕이 잠을 자는 침전, 왕비가 머무는 중궁전, 왕실의 어른이 머무르는 대비전, 세자가 생활하는 동궁전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궁궐 안에서만 생활하는 왕과 왕실의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후원영역이 있다. 이곳에는 연못과 정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다. 


3. 궁궐의 종류   

  법궁(法宮) : 왕이 기거하며 정치를 하므로서 왕조의 법통을 상징하고 왕의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으뜸 궁궐. 조선 전기에는 경복궁이 법궁의 역할을 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면서 창덕궁이 법궁의 역할을 하다가 대원군에 의해 중건이 되면서 법궁의 위치를 되찾았다.


  이궁(離宮) : 법궁이 불에 타거나 예기치 못한 변고가 생겼을 때, 혹은 왕의 의지에 따라 옮기고 싶을 때를 대비하여 지은 궁궐. 조선은 양궐체제를 유지하게 되는 데 이궁은 법궁에 비해 한단계 낮으나 법궁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모두 갖추고 있다.


  별궁(別宮) : 왕이 사신을 접대하거나, 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 집(잠저)을 일컫기도 한다. 세종초기 태종이 양위한 뒤 머물던 수강궁, 대원군이 머물던 운현궁을 말한다.


  행궁(行宮) : 왕이 선대 왕릉등 궝궐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기 위해 지은 궁궐로 수원화성행궁이나 북한산성 행궁터가 있다.


4. 서울의 5대 궁궐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경복궁(景福宮) : 태조 4년(1395) 조선이 개국하여 한양천도와 함께 지어진 정궁으로 서울의 궁궐 가운데 가장 위엄있고 규모로는 으뜸이다. 도성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시경에서 그 이름을 따와 '우리 임금,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소서' 하였으나 지어진지 200년을 넘지 못하고 임진왜란에 소실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그 후 273년간 법궁의 기능을 잃고 잡초속에 버려져 있다가 고종에 이르러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어(1865년) 법궁의 위치를 되찾았다. 하지만 이 기간도 잠깐.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도피하면서(1896년) 왕궁으로서의 운명을 마치게 된다.  


  창덕궁(昌德宮) : 1405년 정종의 양위를 받은 태종은 개경에서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경복궁에서 자신이 벌인 두번에 걸친 왕자의 난 흔적이 남아있어 경복궁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복궁 동쪽에 새로이 궁궐을 짓게 된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궁궐이 창덕궁이며 창경궁과 함께 동궐로 불리었다. 창덕궁은 경복궁이 소실된 이후로 270년 동안 조선 후기의 정궁으로 기능을 하였다.


  창경궁(昌慶宮) : 창경궁은 원래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離宮)이 있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 1418년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을 위해 세종이 그 터에 작은 별궁을 짓고 기거하게 만들어준 별궁인 수강궁이었다. 그러다가 1483년 성종이 왕실의 모후들이 여럿 생존해 있자(세조왕비 정희왕후, 의경세자비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이들을 모시기 위하여 궁을 크게 세우고 창경궁이라 하였다. 그 이후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 남아있는 전각들은 순조때 중건한 것들이다.  


  경운궁(慶運宮)-덕수궁(德壽宮) : 경운궁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는데,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을 비롯해 도성 안에 있는 모든 궁궐이 불에 타는 바람에 의주로 피란간 선조가 다시 돌아와 행궁으로 시작하면서 궁이 되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경운궁으로 고쳐부르고 7년동안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고종은 아관파천이후 경운궁으로 돌아와 정궁으로 사용하였다. 순종에게 황위를 양위하고 순종은 창덕궁으로 옮겨간 뒤에도 고종이 계속 기거하며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희궁(慶熙宮) : 인왕산 기슭에 자리한 경희궁은 광해군때 건축되어 270년간 창덕궁의 이궁으로 사용되었다. 본래 경덕궁으로 불렸던 이 궁궐은 서쪽에 위치해 서궐이라고도 했다.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빈 궁궐이 되고 말았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에 의해 산산히 분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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