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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3. 경복궁 정전 근정전 - 백성을 보살피길 게을리하지 말라!

학이시습지야 2016. 3. 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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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금, 세자 그리고 중국 사신만 출입이 허용되는 근정문

  홍례문에서 영제교를 건너 어도를 따라가면 근정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근정문이 나옵니다. 중국 '주례고공기'에 궁실제도에 보면 '삼문삼조(三門三朝), 오문삼조(五門三朝)라는 조항이 나옵니다. 경복궁은 이 주례고공기의 '삼문삼조(三門三朝)'의 기준에 가급적 맞추어 지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복궁의 삼문은 조정신료와 궐내각사가 근무하는 외조(外朝)의 출입문으로 일명 고문(皐門)이라는 광화문, 정사를 논하는 정전과 편전이 있는 치조(治朝)의 출입문인 치문(雉門) 역할의 근정문, 그리고 왕과 왕실의 생활 공간을 일컫는 연조(燕朝)구역을 출입하는 노문(路門)인 향오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근정문은 조정의 출입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행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묵묵히 지켜보게 됩니다. 근정문 앞마당에서는 임금이 승하하면 국상을 치르는 곡을 하는 흉례의 장소입니다. 선왕이 죽은 지 5~6일만에 세자가 즉위식을 하는데 옥새를 받아드는 장소도 바로 이곳 입니다. 왕비와 세자 책봉, 과거시험, 군사훈련 지휘등이 바로 근정문 앞마당에서 실시되었지요. 근정문 양 옆에 작은 편문이 있습니다. 동쪽은 일화문으로 문관이 드나들고, 서쪽은 월화문으로 무관이 출입하지요.    


2. 드디어 조정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근정전은 임금이 신하의 하례를 받거나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는 법전으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근정문에서 옥새를 받은 새 임금은 근정전 옥좌에 앉아 조정마당에서 '천세, 천세, 천천세'를 외치는 신하들에게 충성서약을 받습니다. 정기적으로 임금은 신하들과 조회를 하고, 세자 책봉식이나 왕족의 혼례 및 외교 사신을 맞이하는 의전을 치르는 곳입니다.

 

  근정전앞은 조정이라 불리죠. '조정에 출사한다'라고 하는 조정 마당은 박석으로 덮여 있습니다. 표면이 거칠게 다듬어진 자연형태에 가까운 화강암으로 빛의 난반사를 유도하여 눈부심을 없애주고, 신료들이 신고 다니는 가죽신의 미끄러짐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 돌들은 강화도 석모도에서 공역을 통해 들여와 깔았다고 합니다. 다른 궁궐과 달리 근정전 조정에 있는 박석은 옛 것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요.   

 

  근정전에서 연중 특별한 날에만 열리는 조하외에 한 달에 네 번 있는 조회가 있습니다. 조정에 나아가는 신하들은 근정문에서 정전으로 이어진 삼도 중에서 가운데 임금이 가는 길 옆으로 오른쪽 길은 문관이, 왼쪽으로 무관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삼도 옆으로 정1품 부터 종 9품까지 12개씩 총 24개의 품계석이 도열해 있어 자기에게 해당되는 위치에 서게 되지요. 감찰관원들은 근정정 행사에 참여한 신하들의 행태와 옷차림등을 감시하여 인사고과에 반영하기도 하였답니다. 박석을 딛고 다니다 보면 둥근 쇠를 발견하게 됩니다. 조정 행사에서 비를 피하거나 강한 햇살을 피하기 위해 정전에서 정2품과 종2품 품계까지 차일을 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리입니다.  


3. 근정전에 위엄을 높이고 우주만물의 이치를 담은 월대 

  조정과 정전은 월대로 구분됩니다. 조정에서 정전을 바라보면 두 개의 돌기단으로 된 월대 위에 근정정이 올라앉아 있어 위엄있는 자태를 보입니다. 상월대는 왕족이나 측근들이 서게되고, 하월대는 악공이나 무희들이 춤을 추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월대에서 조정으로 내려갈 때 임금은 가마로 이동을 하는데 가마가 지나갈 수 있는 답도와 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답도에는 암수 한쌍의 봉황을 그려넣어 태평성대를 기렸습니다. 





    답도는 해태와 구분되어 양 옆에 계단이 나 있습니다. 봉황이 새겨진 답도의 소맷돌을 폐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려조에 신하들이 '폐하'라고 불렀는데, 중국 황제를 부를 때와 같은 호칭이었으나, 조선에 이르러 사대주의에 기반한 정치사상에 따라 중국 제후를 부르는 '전하'로 스스로 낮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한제국시대에 고종과 순종을 다시 '폐하'로 잠시 불렀지요.


  월대에는 하늘을 지키는 사방신과 땅을 지배하는 십이지신상 그리고 서수(상서로운 상상의 동물)가 각각 한쌍씩 마주보고 서있습니다.

  사방신은 동서남북 방위와 함께 우주질서를 받쳐주는 상징적인 동물로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근정전 동서남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근정전에 사악한 기운이 감히 접근을 막고 있는 십이지신상이 상월대와 하월대에 골고루 나뉘어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십이지신 중에 개와 돼지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월대의 네 귀퉁이 돌출부에는 상서로운 짐승을 이르는 서수(瑞獸)와 그 가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제교를 새겨진 서수와 같이 근정전에서 행해지는 정사가 항상 정의롭고 억울해하는 백성이 없어야 한다는 불의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새끼를 품은 형상은 대를 이어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월대 기단에는 '드므'라는 방화수통이 있습니다. 건물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크기의 통인데 본래의 기능보다는 목재로 지어진 건물 특성상 상시 화재에 긴장의 끈을 놓지말라는 경고와 화마를 쫒아내고자 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정전 처마에 커다란 세 발을 가진 향로처럼 생긴 그릇이 보입니다. 정(鼎)이라고 합니다. 중국 주나라 우왕 시절에 9개의 제후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각각 가져온 청동으로 세 발 달린 커다란 솥을 만들었다 하여 구정이라 불렸고, 이것이 황제의 상징으로 진나라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구정이 없어지자 진시황은 황제의 상징으로 옥새를 만들어 샤롭게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됩니다.


4. 근정전, 국보 223호

 근정전은 1867년에 중건된 조선시대 마지막 대작으로 국보 제223호입니다. 2층 구조 지붕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목조건물로  팔작지붕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귀마루에는 7개의 잡상이 올라 앉아있습니다. 겉보기엔 2층구조이나 내부로 들어가 보면 전체가 한 공간으로 트여 있는 통층구조로 높은 천장과 그 높이를 지탱하고 있는 굵은 기둥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안쪽 중심에 놓여 있는 용상()과 그 위를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한 보개(), 용상 뒤로 섬세하게 조각된 삼면의 목조 병풍, 왕권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고 칭송하는 의미를 지닌 일월오악병()은 여전히 왕실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높고 깊은 천장 중앙에는 황제에게만 사용되던 칠조룡()이 조각돼어 있습니다. 원래는 발톱이 다섯개 달린 오조룡이 그려져 있어야 하나 경복궁 중건 당시 청나라의 견제하려는 대원군의 의중이 담겨 있어 칠조룡을 그려넣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칠조룡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중건한지 50년도 되지 않아 근정전에 대형 일장기가 걸리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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