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문화유산 이야기/21. 궁궐이야기

[경복궁] 5. 수정전과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경복궁 궐내각사, 영추문

학이시습지야 2016. 3. 2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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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궐내각사가 없어진 자리에 휴게소 들어서있네요...

  흥례문을 들어서면 임금의 통치행위를 보좌하고 왕족을 도와주는 관청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궐내각사지요. 지금은 건물 한채만 홀로 남아 있으나 고종 때에는 주변에 200칸 가까운 행각()들이 있었고, 이웃하여 대전장방(殿)·내반원()·수라간()·정원()·빈청()·선전관직방()·검서청()·옥당()·약방·의관방()·내각() 등의 전각들이 영추문()에 이르기까지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2. 고종의 편전이었던 수정전,

  수정전은 경복궁에서 치조시설이었음에도 경복궁 기본 축선에서 벗어난 위치에 지어졌습니다. 초기에는 집현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867년 중건되면서 수정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전(殿)의 품격을 가지고 있어 월대를 갖추고 있으며, 앞면 10칸, 옆면 4칸으로 총 40칸이며 경복궁 전각 중에서 가장 칸 수가 많습니다. 이 곳은 한 때 고종의 편전으로 사용되었고, 1894년 동학혁명으로 촉발된 근대화의 요구에 맞춰 개화파인 김홍집내각이 이끈 갑오개혁(갑오경장이라고도 하죠)을 단행하고 이 때부터는 내각청사로 사용되었지요.


3. 자격루로 조선을 표준시를 장안에 알리다.

  월대 앞면 서쪽 계단 옆에는 보루각 표지석이 있습니다. 1434년 자격루를 설치하여 조선의 표준시를 알려주던 기관이었다고 합니다. 자격루는 세종대의 대표적 발명품으로, 시각을 정확히 자동으로 알려주는 장치였지요. 물을 보내는 그릇 넷과 물받이 두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자동 물시계에는 각종 인형을 장치하여 시각에 따라 종·북 또는 징을 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든 장치는 뒤로 감춰져 있고 겉에 시각을 알리는 인형만이 보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보루각에서 시계가 자동으로 소리를 내면 그에 따라 경복궁의 문루에서 같은 신호를 받아 서울 시내에 시각을 알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세종 이후 기능이 쇠퇴하게 된 자격루 때문에 보루각은 점차 중요성을 잃어가면서, 1455년(세조 1) 사용이 중단되었던 자격루는 곧 수리되었으나, 1505년(연산군 11)에는 창덕궁에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4. 영추문, 조선 변란의 시작과 법궁으로서의 마지막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경복궁의 서쪽 대문인 영추문은 궐내각사에서 일하는 관리들이 출입하였던 곳으로 조선 전기에는 가장 활기가 넘치던 곳이었습니다. 영추문 밖 통인동에 살던 이방원이 정도전을 제거하고 이어 바로 이 문으로 사병들을 이끌고 들어가 세자 방석을 제거하였다고 합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은 1986년 2월 11일 새벽 일제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이 문을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하면서 경복궁이 법궁으로서 지위를 내려놓게 되는 비운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문이기도 합니다.


  일제에 들어서 전차 통행으로 말미암아 철거되고 마는데 1975년 복원된 이 문은 동쪽의 건춘문과 일직선상에 있어야 하는데도 북쪽으로 치우쳐 있고 시멘트로 대충 복원하여 유적으로의 가치를 완전히 훼손하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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