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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7. 임금과 왕비의 은밀한 공간 - 강녕전, 교태전 그리고 아미산

학이시습지야 2016. 3. 2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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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임금은 왕비와 각방을 썼나?

  편전인 사정전에서 나와 향오문을 들어서면 임금의 침전(寢殿)인 강녕전(康寧殿)이 나오고, 강녕전을 돌아 양의문을 지나면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이 나옵니다. 임금과 왕비가 머무는 사적인 공간이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사실 침전이라고는 하지만 각각 개인적인 공간으로서 역할이 있습니다.

  왕의 침전은 사정전이 공식적인 일과를 보내는 곳이라면 강녕전은 임금이 공적인 업무를 접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독서와 휴식을 즐겼고, 때로는 은밀하게 신하를 불러 면담도 하는 곳이지요.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은 왕비의 전용 공간으로 중궁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곳은 임금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외척이나 종친이라도 출입이 엄격히 차단되는 곳이지요. 왕자가 생산되는 곳은 엄밀히 말하면 교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방을 썼다기 보다는 강녕전이 요즘으로 치면 임금의 서재인 셈이지요.

   강녕전과 교태전은 똑같이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용으로 상징되는 임금의 침전에 용마루를 걸면 임금이 둘이 되므로 용마루를 없앴다고 하는데 통설은 아닙니다. 

 

2. 임금의 생활영역 강녕전 일곽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강녕전은 1995년에 복원된 모습입니다. 1917년 창덕궁 희정당이 화재로 소실되자 일제가 교태전과 함께 뜯어 희정당을 복구하는데 써버리는 바람에 그 이후 복원될 때 까지 잡풀만 나뒹구는 휑한 모습이었지요.  

  강녕전중심으로 주위에 네 채가 전각이 들어서 있습니다. 동쪽에 연생전이 서쪽에 경성전과 마주보고 서있고, 강녕전 양 옆에서 한걸을 뒤에 떨어져 응지당과 연길당이 부속하여 서 있습니다. 중국 삼황오제 가운데 복희, 신농, 금천, 전욱, 헌원 이 다섯 임금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게끔 왕을 도와준다는 음양오행의 믿음에, 건국 초에 3침이었던 전각을 대원군이 1876년 중건할 때  5침으로 확장하였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숫자 '5'에 대한 믿음은 출입문인 '향오문'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내전의 으뜸 전각인 강녕전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의 오복에서 가운데에 해당하는 ‘강녕’의 의미를 담아 정도전이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정(井)’자 모양으로 9개의 방을 구성하여 한가운데 방은 왕이 사용하고, 주위의 방에서는 상궁과 나인들이 24시간 숙직을 하게 되지요. 왕비가 아닌 후궁이나 궁녀와의 사랑은 왕비의 눈을 피해야 하므로 이 곳에서 이루어 질 수 밖에 없지요. 물론 궁녀나 후궁의 처소를 이용할 수도 있으나 경호경비의 어려움이 있어 임금들도 피하지요. 

 

  강녕전 앞에는 다른 전각과 달리 월대가 있어 왕실 가족을 불러 연회를 열거나 행사가 있을 때 무대로 사용하였지요. 강녕전과 부속 전각과는 복도각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강녕전에 있는 네 채의 보조전각들은 일종의 임금의 사랑채 구실을 하지요. 경연을 갖거나 홀로 조용히 독서를 하고플 때는 작은 침전에서 머물었습니다. 이 중에서 경성전은 명종이 승하 할 무렵 대비의 부름을 받고 하성군(중종의 셋째 아들 덕흥대원군의 아들)이 머물면서 임금에 오르기를 기다렸던 장소였습니다. 당시 하성군은 본가에서 모친의 상중에 있었지요. 명종이 승하하자 바로 양아버지의 상주로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 임금이 바로 조선조에서 부끄러운 업적을 남긴 선조입니다.

  강녕전에서 교태전으로 들어가는 양의문 양 옆에는 화방벽 밖으로 돌출된 강녕전 굴뚝이 붙어있습니다. 밝은 황토색 전돌로 구성하였는데 굴뚝 앞면에 한자로 상감처리하여 놓았지요. 무어라 써놓았나요?  만수무강(萬壽無彊), 천세만세(天世萬歲)


3. 중전마마의 사적영역인 중궁전의 이름, 교태전(交泰殿)

  한 나라의 왕비로서 또, 궁궐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관리하는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마마의 공식적인 집무실겸 침전을 중궁전이라고 합니다. 북궐도에 보면 교태전이 궁궐 한가운데 위치하여 있어서 中宮殿이라고 했나봅니다.

  중궁전을 아홉개의 담장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구중궁궐. 정말 9개의 담을 거쳐야 하나요? 한번 들어가 볼까요?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에서 티켓사서 근정문을 들어서면 임금님께 인사드리고, 사정문을 지나면 향오문이 나오지요. 임금님 몰래 강녕전을 돌아 양의문을 지나면 교태전에 다다르죠. 여섯개의 담을 지나야 들어올 수 있네요.






  교태전은 창건 초기에는 없었지요. 강녕전이 임금과 왕비의 처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세종조에 교태전을 비롯해 주변의 함원정과 자미당, 송백당, 창연루들을 지었지요. 세종의 정실왕비인 소헌왕후가 교태전의 첫번째 주인었던 셈이죠.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답게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탄생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교태전 가운데는 앞 뒤가 트여 대청마루처럼 사용할 수 있고 그 양쪽으로 온돌방이 붙어 있지요. 각 온돌방은 칸막이용 장지문으로 침소를 여러 개로 나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운데는 커다란 정사각형이면 둘레의 방은 길고 좁게 되어 있지요. 평소 왕비는 서쪽 온돌방을 주로 사용하다가 왕자를 생산할 택일이 정해지면 동온돌방에서 임금과 합방을 하게 됩니다.


4, 양의문이 여섯 짝인 이유

 교태전으로 들어가는 양의문(兩儀門)까지도 음양을 의미하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으니, 왕과 왕비가 만나 잘 교통하여 후손을 많이 낳기를 바라는 뜻을 중전의 침전에 담고자 한 것입니다. 양의문은 강녕전의 대문인 향오문과 특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향오문은 두 짝으로 둔중한 데 비해 양의문은 여섯 짝으로 병풍처럼 가볍게 접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교태전은 여인들의 처소였으므로 여인들이 힘 들이지 않고 여닫을 수 있도록 배려한 조상들의 마음 씀씀이를 읽을 수 있죠. 이 문의 걸쇠는 당연히 문 안쪽, 즉 교태전에 있어 임금도 중궁에 들어서려면 안쪽에서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5. 전하와 중전의 호칭은 어디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왕의 호칭으로 알고 있는 ‘전하(殿下)’는 궁궐의 전각과 관련 있는 말에서 왔죠. ‘전하’는 전각 아래에서 엎드려 우러러본다는 극존칭의 의미로 ‘○○전(殿)’에 사는 왕이나 왕비에게 붙이는 것입니다. 침전은 궁궐 한가운데 있고 궁궐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중궁전(中宮殿)’이라 하고, 왕비는 ‘중전殿(中)마마’라 칭하게 되었지요. 세자가 거처하는 곳은 내전의 동편에 배치하고 그 지역을 동궁(東宮)이라 불렀기에 세자를 동궁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폐하는 폐석아래에서 우러러 본다는 극존칭에서 오다 보니 일반적으로 황제 앞에 나아갈 때 부르는 호칭입니다. 따라서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 예를 갖추기 위하여 제후를 일컫는 전화라고 낮추어 부르게 되었지요. 사극에서 조선조에는 모두 임금을 '전하'라 하는 게 맞고, 고려조는 이러한 사대주의가 없어서 중국과 동등하게 황제라는 호칭으로 '폐하'라 하였으니 사극을 볼 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6. 구중궁궐의 작은 정원 아미산

  일당 왕비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오면 폐위되어 쫒겨나기 전까지는 죽을때까지 궁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사가의 부모 상을 입더라도 겨우 금천교까지 나가 곡만 하고 돌아와야 하지요. 이처럼 갑갑한 궁중생활을 다소나마 위로하기 만들어진 동산이 아미산입니다. 아미산이란 이름은 중국 사천성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아미산에서 따온거니 이미 그때도 중국 아미산의 아름다움은 조선에 까지 알려져 있었네요.

  아미산은 경회루 연못을 파내면서 나온 흙으로 쌓아놓은 가산(假山)입니다. 가산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여고 평지에 만든 작은 인공산으로 왕비가 거처하는 궁전의 후원에 자연을 축소한 정원으로 꾸며놓아 왕비의 힐링 효과를 가져다 주게 됩니다.

  4단으로 꾸며올린 화계(花階)에 화초를 심고 자연의 운치가 가득한 괴석을 독치(獨置)해 놓았습니다. 중간중간에 돌로 만든 함지와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달이 담긴 함월지(含月池), 노을이 비치는 호수를 의미하는 낙하담(落霞潭)이 두번째 화단에 서있고, 맨 아래 화단에는 연꽃과 두꺼비를 조각해 놓은 석지가 놓여있습니다. 


  위쪽 화단에는 육각형으로 된 높이 2.6M 되는 교태전과 연결된 굴뚝이 서 있습니다. 육각형은 하늘과 땅, 동서남북의 육합으로 '온세상'을 의미하죠. 여섯 면의 몸체에는 여러가지 동식물을 빚어넣은 벽돌을 박아놓았습니다. 맨 위에 질긴 생명력을 의미하는 당초문을 새겨 넣었고, 그 아래에 학, 봉황, 박쥐, 나티가 새겨진 벽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가운데 몸통에는 제법 큰 바탕에 모란, 국화, 매화, 대죽이 그려져 담겨있고 맨 아래에는 해치, 불가사리, 박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처럼 아미산은 철마다 온갖 화초와 함께 산과 호수 괴석과 동식물이 함께 어울려 공생하는 왕비 마음 속의 이상향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선경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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