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 왜 지어졌나
국보 224호, 경회루는 연못 안에 조성된 2층 목조 누각으로,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임금이 공신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적 행사 장소로 사용하던 건물입니다.
경복궁 창건 초기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정종이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전락하였습니다. 1412년 창덕궁에서 정사를 보던 태종이 공조판서 박자청에게 명하여 웅장하고 화려한 누각으로 다시 탄생하였죠. 누각 이름을 지어올리라는 명을 받은 하륜은 "올바른 정사를 펴는 임금은 올바른 신하를 얻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으니, 올바른 사람을 얻어야 경회한다"는 의미로 "경회루"라고 지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에 경회루도 피해를 피하지 못하고 소실되었으나, 대원군에 의해 1867년 중건되었지요. 원래 경회루는 사방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일제가 담장을 모두 걷어내었지요.
영화 '간신'의 무대였던 연산군조에는 전국에서 채홍사가 뽑아올린 1,000명이 넘는 기생들과 이 곳에서 주야로 음주 가무를 즐기면서 재물을 탕진했다고 합니다. 차출된 기생 중에서 가장 빼어난 기생들을 '흥청'이라고 하였는데, 이들 흥청에게 비단옷과 재물을 주어가며 주야로 벌이는 연회에 돈을 물쓰듯 국가 재물을 탕진하는 모습을 보고 '흥청망청'이라는고 한데서 낭비를 일컫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2. 경회루의 구조
경회루는 남북으로 113m, 동서로 128m가 되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네모진 연못 안에 지어져 있습니다. 연못은 지하에서 솟아나는 물과 궁궐 깊은 곳에 자리한 향원지에서 흘러들어옵니다. 연못 안에는 세 개 의 인공 섬이 조성되었는데, 동쪽에 치우쳐 있는 네모난 섬 위에 정면 7칸, 측면 5칸 규모의 2층 누각 건물로 지어졌지요. 건물 하층의 바닥은 네모난 전돌을, 상층 바닥은 장판자의 누마루를 깔았습니다. 동쪽과 서쪽에는 하층에서 상층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계단을 두었다. 경회루 서쪽으로 있는 네모난 섬 두 곳에는 소나무를 심어져 있죠.
아래층 전돌 바닥을 딛고 48개 기둥이 누각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바깥쪽 24개는 사다리꼴 돌기둥이고, 안쪽 24개는 기둥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직선으로 조금씩 가늘어지는 민흘림돌기둥입니다.
경회루는 둘레를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아 기단을 삼은 네모 반듯한 섬 위에 세워졌으며, 세 벌로 조성된 돌다리를 통하여 연결되는데, 남쪽의 것이 임금을 위한 다리다. 다리의 돌난간과 네 귀는 짐승 모양의 조각으로 장식되었고, 섬을 이루는 돌 기단 둘레에도 돌난간이 둘러있고, 모퉁이마다 돌로 조각한 12지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돌난간은 하엽동자(荷葉童子)와 팔각의 돌난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단의 서쪽으로는 계단을 두어 연못에서 배를 탈 수 있도록 하였지요.
2층 바닥은 평면이 아니고 3단 높낮이를 두었습니다. 가장 가운데는 3칸 x 1칸 으로 꾸민 가장 높은 단으로 천·지·인 삼재를 상징하고 이 세 칸을 둘러싸고 있는 8개의 기둥은 천지만물이 생성되는 기본인 주역의 8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연회가 열리면 임금이 앉는 중궁(中宮)입니다. 그 주위로 중궁보다 약간 낮게 만든 5칸 x 3칸의 12칸 마루가 에워싸고 있는데 1년 12달을 상징하며, 왕의 종친과 조정 고위 대신들이 자리하게 됩니다. 가장 바깥을 둘러싼 24칸은 1년 24절기와 24방(方)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경회루는 당시 유가의 세계관을 건축 형식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곳 2층에서는 북쪽으로 백악, 서쪽으로 인왕, 남쪽으로 남산을 멀리 볼 수 있어서 이 곳이 자연과 함께 하며 연회를 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경회루에는 불을 잡아먹는 짐승인 불가사리 둘을 금속으로 제작하여 연못 속에 넣어 화기(火氣)를 막으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상징물 하나가 최근 경회루 방형 연못을 청소하면서 나왔습니다.
3.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되다.
조선 역사에서 처음으로 장자승계한 문종이 일찍 병사함에 따라 왕위를 계승한 어린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준 곳이 이 곳 경회루입니다. 옥새를 넘겨받은 수양은 이튿날 곧바로 근정전에서 신하들의 하례를 받습니다.
성종에 이르러서는 경회루를 고쳐 지으면서 아랫층 돌기둥에 반룡을 새겨 한층 위엄있게 꾸며놓았으나, 대원군에 의해 중건되면서 당백전을 마구 발행하였음에도 예산이 부족하여 지금처럼 민무늬로 지었지요.
연못 서북쪽으로 돌기둥 두 개가 물 속에 담겨 있는 육각형 평면의 하향정(荷香亭)은 이승만대통령이 낚시를 즐기기 위해 제1공화국 시절에 지은 정자입니다.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가 전쟁이 발발한 지 6시간 만인 6월25일 오전 10시나 되어서 북한군의 남침 사실을 보고 받았다고 합니다.
4. 경회루 특별관람을 꼭 해보자.
경회루 누각에 직접 올라가보는 특별관람이 4월~10월 기간 중에 하루 세차례 할 수 있습니다. 전문해설사가 동반되며 한 회에 100명의 인원제한이 있고, 인터넷으로 예약하여야 합니다. 단, 외국인은 전화예약이 됩니다.
아울러 경복궁 야간 개장에 맞추어 경회루에 와서 연못에 잠긴 달빛과 누각을 렌즈에 담아보면 어떨까요? 지금은 동쪽과 북쪽만 담장이 둘러져 있는데 원형 그대로 복원이 되면 지금처럼 남서쪽이 트이지 않고 막히게 됩니다. 만약 경회루가 처음 만들어질 때와 같이 복원되어 사장이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지면 창덕궁 후원처럼 아마 특별 요금을 내고 입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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