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끝나고 '진실이 지옥문'이 열렸다."
지난 3년 문재인 정부의 모든 국정 스케줄이 4·15 총선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총선을 이겨 좌파 집권을 연장하려는 정치공학적 목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 이념 주도의 자해(自害) 국정으로 치달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국가 전체로는 손해여도 자기편에 이익 되고 표 얻는 데 도움 되는 정책들을 3년 내내 쏟아냈다. 소득 주도 성장론과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과격한 근로시간 단축, 탈원전, 노동 개혁 후퇴, 기업 때리기, 반(反)시장 규제 등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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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가 이념형 국정을 고집하는 한 이 절박한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은 없다. 지난 3년 같은 '선거 주도 국정'을 계속했다가는 여지없이 무능함을 드러내고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이제 총선은 끝났고, 경제 실정을 그렇게도 감추고 싶어 하는 문 정부 앞에 '진실의 지옥문'이 열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6/2020041600125.html)
조선일보 박정훈논설실장이 4월 16일 자신의 기명칼럼란에 올린 글이다. 조선일보는 자칭 대한민국 종이언론사의 대표주자다. 언론이 제4의 권력이라고 한다. 국민의 여론을 관찰하고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이 바로 언론의 책무이자 권한이다.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국정을 이끌어 가는 정부와 청와대 그리고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가 제대로 역할 하도록 감시하고 채찍을 가한다면 '나라다운 나라', 나아가 세계 무대에서도 전혀 뒤쳐지지않고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논설실장 눈에 비친 문재인정부는 지난 3년동안 오로지 4.15 총선 승리를 위해 나라살림은 모두 팽개치고 오로지 "국가 전체로는 손해여도 자기편에 이익 되고 표 얻는 데 도움 되는 정책들을 3년 내내 쏟아냈다"고 한다. 그로 말미암아 나라 살림은 피폐하고 기업은 물론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몰락의 길로 모두 내몰았다고 한다. 심지어 박근혜정부가 세제 개편으로 확보한 국가 재정마져 모두 털어먹고 조만간 나라의 곡간이 텅텅 비어 경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호언한다.
칼럼 말미에 "앞으로 지 난3년같은 '선거 주도 국정'을 계속했다가는 여지없이 무능함을 드러내고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이제 총선은 끝났고, 경제 실정을 그렇게도 감추고 싶어 하는 문 정부 앞에 '진실의 지옥문'이 열렸다." 라고 마무리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언론사 논설실장이라면 선거 결과 던진 국민들 사이의 민의의 행간을 읽어내어 정부와 새롭게 출범할 국회에 따끔한 충고를 할 줄 알았다. 기명식 칼럼은 자신의 개인의 소신과 주장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사 논조를 지휘하는 실장이 지면에 채우는 칼럼은 공인의 목소리다. 개인적인 화풀이를 내뱉는 자리는 아니라고 본다.
이 언론사가 그토록 얻어내고 싶은 총선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일개 말단 기자가 술좌석에서 화풀이하듯 내갈겨 쓰다시피한 칼럼은 거의 찌라시에나 올라갈 수준밖에 되질 못한다. 이 언론사가 노골적으로 응원하는 황교안후보도 떨어지고, 자칭 대권인 오세훈도 신예후보장에게 덜미가 잡히고, 막말 퍼레이드를 펼쳐온 후보자들이 모두 국회 실업자가 되었으면 그 패인을 분석하여 꾸짖어야 하지 않을까?
헌데 칼럼은 현 정부가 '진실의 지옥문'으로 나가 떨어지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정부가 두려워하고 항상 국회의원 자신들을 항상 감시하여 '국회다운 국회' 역할로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건만 시정잡배가 술먹고 길바닥에 쏟아내는 토사물보다도 역겨운 주문을 읊고 있다.
그래서 같은 날 올라온 사설을 열어보았다.
역시 사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도 칼럼을 쓴 자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참패를 한 야당이 왜 선거에서 참혹한 결과를 받아들었는지 분석하여 놓았다. '정권의 실정(失政)이 그토록 무지막지하고 행정, 사법, 지방자치단체 모두 여당이 장악하여 권력의 폭주가 불보듯 뻔하다고 한다.
1980년대를 관통하여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칼럼리스트가 있었다. 나는 매주마다 그의 칼럼이 실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신문을 사서 칼럼을 오려 공책에 붙여놓고 자주 열어 읽어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의 칼럼에는 왠지모른 품위가 느껴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따금씩 정부를 향해 훈계를 하더라도 막말은 물론이고 악다구니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나가길 염원하는 뼈저린 충고를 잊지않았다.
나에게 조선일보란 언론사가 아니라고 잘라낸지 오래다. 하지만 '선우 휘' 칼럼을 열독하던 청년시절의 소중한 기억이 살아있기에 커다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인터넷에서 조선일보 칼럼이나 사설을 뒤져보는 수고(?)를 하였는데 앞으로는 그마져도 하지 말아야 겠다. 찌라시가 배설하는 악다구니로 말미암아 부드럽지 못한 내 감성마져 더 모가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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