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덕수궁의 법전인 중화전
다른 궁궐의 법전과 마찬가지로 중화전도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나라의 중요한 공식행사를 갖기 위한 공간입니다. 1902년 10월에 세워졌으니 고종이 덕수궁으로 환궁하고 나서 5년 뒤에 지어졌지요. 처음 지어졌을 때는 지금 보는 것과는 달리 중층 지붕으로 훨씬 장중하게 지어졌으나 1904년 함녕각에서 시작한 화재로 지어진 지 2년만에 소실되어, 지금처럼 단층지붕으로 축소되어 중건되었습니다.
중화전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반포하면서 그에 걸맞게 황궁으로서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각의 외부 창호에는 중국 황궁처럼 황색으로 하였고, 중화전을 오르는 답도에는 봉황 대신 용이 두마리 들어가 있습니다. 화재를 막는 드므의 표면에도 천세(千歲)가 아닌 만세(卍歲)가 새겨져 있습니다. 조정에는 삼도와 품계석이 구비되어 있지만 조정 좌우에 둘러져 있어야 할 행각들이 복원되지 않아 사방이 열려있는 모습입니다.
2. 일제가 강제한 양위식에 품계석은 말없이 흐느끼며 서있고...
1907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만국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 한 고종에게 일제는 그 책임을 물어 강제로 황위를 순종에게 넘겨줄 것을 강요합니다. 200여명이 넘는 일본 무장 군인이 중화전을 포위하고 양위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고종을 포탄을 들이대면서 위협합니다. 일제는 결국 고종황제와 황태자가 참석하지 않은 상태로 내시 두 명을 꼭둑각시로 세워놓고 제멋대로 양위식을 거행합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일제는 고종을 함녕전에 유폐시키고, 순종황제를 강제로 창덕궁으로 이어시킵니다. 이렇게 두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양위식을 거행한 이후부터 조선의 궁궐은 일제에 의해 마구잡이로 훼절되고 맙니다.
3. 1904년 대화재의 진원지 함녕전
중화전에서 오른쪽으로는 편전인 덕홍전과 침전인 함녕전이 나란히 앉아있습니다. 사실 고종황제는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정사를 펼친 것이 10년 남짓합니다. 그 와중에 화재로 전각들이 소실되고 하면서 실재로 정사를 돌보기 위해 편전이나 침전을 사용한 시간이 별로 많질 않죠.
덕홍전은 명성황후의 위패를 모신 혼전인 경효전이 있던 자리였으나 대화재 이후에 세워진 전각입니다. 주로 외국 사신을 접견할 목적으로 지어지다 보니 겉은 전통양식을 따랐으나 내부는 서양식 양탄자와 전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내부를 들여다 보면 이화문양이 눈에 들어옵니다. 인정전 용마루에 있는 모양과 같습니다.
사신 접견 장소였던 덕홍전 | 덕홍전 내부 모습, 이화문양과 전등 |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일상생활도 하고 잠도 자는 침전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황제는 일제의 감시와 위협에 시달리다가 결국 1919년 함년전에서 승하하십니다. 함녕전은 두 개의 침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쪽은 고종이, 서쪽은 후궁이 사용하였지요.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후에는 황후를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덕수궁에는 중궁전이 따로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함녕전은 1904년 4월 덕수궁을 잿더미로 만든 대화재의 발원지입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 방화냐 실화냐는 논쟁이 있는데, 많은 분들의 의견은 일제에 의해 고의로 저질러진 방화로 추정될 요소가 많다는데 모아지고 있습니다. 함녕전 온돌을 수리한 다음 건조시키는 과정에서 불을 잘못 짚혀 전각의 기둥으로 옮겨붙은 불이 북동풍을 타고 삽시간에 궁궐 전체로 번졌다고 당시의 일본계 언론은 쓰고 있습니다. 온돌의 구조상 아무리 과열이 되어도 기둥에 불이 옮겨 붙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중론입니다.
불에 타버린 덕수궁 | 대화재의 진원지인 함녕전의 그 아궁이 |
함녕전에는 1896년 10월 전화기(Telephone, 德律風)가 설치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전화기 덕분에 김구선생께서 1896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 장교를 처단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감옥에 수감중이었는데, 8월 23일 고종이 인천감리에게 전화를 걸어 그 죄를 감1등하도록 명하여 목숨을 건진 일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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