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문화유산 이야기/22. 서울순례길

[조선왕릉] 1.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까닭은?

학이시습지야 2016. 9. 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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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서는 인류가 남긴 소중한 문화와 자연유산을 후대까지 고유한 모습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선조들께서 남긴 많은 문화유산 중에서 여러 곳이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창덕궁에 들어가면,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가기 전에 사진과 같은 표지가 서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을 상징하는 심벌을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 사각형은 인간이 창조한 형상을 의미하고, 둥근 원은 자연을 말하고 있지요. 사각형과 원이 서로 이어져 있어, 인간과 자연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지어져 있음을 나타내고 둥근 로고는 전세계에 있는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네요.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는,

  1. 서울에 있는 고궁 중에서 창덕궁 

  2. 정조가 지극히 사랑한 수원화성

  3. 목판인쇄본의 보관 비밀이 숨어있는 해인사 장경판전

  4. 아직도 이어내려오고 있는 제례의 규범 종묘

  5. 신라의 유적이 산재한 경주 역사유적지구

  6. 김대성의 걸작 석굴암과 불국사

  7. 고창, 화순, 강화에 있는 고대무덤 고인돌유적

  8. 한반도의 보석 제주에 있는 화산섬과 용암동굴

  9. 한국 고유의 마을모습을 간직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10. 인조의 설움이 담긴 남한산성

11. 부여, 공주에 남아있는 백제 역사유적지구

12. 한성 백리길 안에 안장되어 있는 조선왕릉 


으로 총 12곳에 이르는 문화유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조상이 남긴 기록물들도 별개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 일기, 팔만대장경판, 조선왕조의궤 그리고 동의보감 등 총 7개의 기록물이 이에 속하지요. 더불어 종묘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강수월래, 처용무 등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호받고 있지요.       


2.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까닭은?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심사에 통과될 당시인 신청이유가 다음과 같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왕릉의 조형 예술적 가치

  "조선왕릉은 전체 형태나 석물의 예술적 표현에서 고유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능묘와 견주어 알 수 있듯이 조선왕릉의 봉분 축조방식이나 각종 석물배치는 주변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문무석인의 조형이나 병풍석과 난간석은 조선왕조 조형예술에서 달성한 독특한 경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홍살문에서 향로·어로를 따라 이어지는 정자각의 단순하면서 절제된 건축형태는 조선왕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엄숙하고 독특한 조형세계이다."

조상을 정성껏 섬기는 유교적 가르침의 모범

  조상을 모시고 그 가르침을 이어받드는 유교적 가르침을 왕이 몸소 실천함으로서 백성들에게 이를 배우고 실천해 나갈수 있는 전형을 보여주고 있지요

풍수라는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양식

  풍수 이론에 대한 조선 고유한 해석과 적용도 조선왕릉이 보여주는 문화적 특징입니다. 조선왕릉에 적용된 풍수이론은 한반도의 지리특성이 고려된 조선 고유한 방식으로 구현 되었죠. 중국처럼 지리적 약점을 인공적인 구조물로 보완하려는 방식 대신에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 조건에 구조물을 맞추어나가는 자연친화적인 방식을 선택하여 그 가치와 독창성을 더하였습니다.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온 가치

  조선왕릉과 관련한 풍부한 기록물 역시 주목할 가치입니다. 능원을 조성하면서 작성한 산릉도감의궤는 석물의 배열이나 정자각의 조성과정은 물론 산릉조성을 위해서 흙을 지어 나르는데 참여한 단순노역자의 이름까지 작성한 모든 문서가 남아있지요. 따라서 설령 왕릉 중 일부가 불의의 사고로 훼손되거나 본래 모습을 상실했다고 해도 이들 의궤를 통해서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산릉도감의궤라는 뛰어난 기록물이 있음으로써 조선왕릉은 그 물리적 진정성을 견지할 수 있으며 이것이 조선왕릉이 갖는 고유한 가치의 또 다른 면이 되지요.

6백년을 이어온 왕실의 제례가 이루어지는 전통계승

  1910년 조선왕조가 막을 내렸을 때 왕릉의 제례 역시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여건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어려운 소임을 맡아서 제례를 계속해 나갔으며 그것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왕릉 제례 외에도 종묘제례도 주관하면서 조선왕조의 무형적인 문화전통을 계승하고 있지요.



  사실 그동안 근대화에 이은 도시 집중화의 영향으로 여기저기 토지 난개발이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었는데도 용케 피하여 오늘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 또한 용하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8~90년대 강남에 뜨겁게 부동산 열풍이 불어닦쳐 과수원밭들이 대형빌딩과 대단위 아파트로 변모하여 이제는 새로운 서울에 상업중심지가 되었잖아요? 그 와중에도 선릉역에 인접해 있는 선정릉이 훼손되지 않고 도심지가 내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전부 산소로 치환시키겨주는 고마운 강남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아닌가요? 

     

3. 능(陵), 원(圓), 묘(墓)

  조선시대 왕실가족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구별이 됩니다.

  능(陵)은 왕과 왕비를 묻혀있는 곳을 이르는데요, 추존왕과 왕비의 무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현존하는 조선왕릉은 총 42기의 능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조선 2대왕인 정종의 후릉과 태조의 정비인 신의고왕후의 제릉은 북한에 있어 남한에는 40기의 능이 묘셔져 있습니다.

  원(圓)은 왕위를 이어받지 못한 왕세자와 그들의 비, 왕세손과 비 그리고 왕을 낳은 후궁의 무덤이 이에 속합니다. 대표적으로 효창원과 휘경원이 여기에 속합니다

  묘(墓)는 능과 원에 묻히지 못한 왕족이나 일반인의 무덤을 말하지요. 여기서 왕이었지만 능으로 지정되지 못한 두 기의 묘가 있습니다. 바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를 이르지요.


4. 왕릉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조선시대 왕릉은 한양 도성에서 10리 밖이면서 100리 안에 만들도록 하였다고 경국대전에 나와 있습니다. 왕릉이 궁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선왕을 자주 찾아가기 어렵고, 왕릉 참배를 위하여 궁을 오랜시간 비우게 되면 자칫 민감한 정치적인 사태가 조장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비상사태가 돌발할 경우 신속한게 궁궐로 돌아올 수 있는 거리를 감안하여 도성 인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왕릉을 조성토록 하였을 것입니다.  


  요즘에도 대권을 향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유력 정치가들 중 일부는 조상의 묘를 명당 자리로 이장하여, 조상의 음덕을 받아 권좌에 오르고 싶은 분들이 있나 봅니다. 소위 잘되면 내탓이지만 못되면 조상 탓이라 조상 땜에 잘못되길 원치않나 봅니다. 

  

  명당 자리는 왕릉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왕실의 무궁한 번창을 통해 종묘사직을 굳건히 자자손손 잇고자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명당 자리를 찾아서 왕릉을 모셨지요. 복받은 땅에 선왕을 모셔야 하는 후왕의 효심과 정성이 가득 담긴 곳이지요. 일반적으로 왕릉이 모셔져 있는 곳은 그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시설들로부터 격리시키고 두 겹의 산이 에둘러있고, 산맥이 뻗어나가다가 앞에 강이나 물줄기를 만나 더이상 뻗지 못하는 곳이 됩니다. 결국 뒤에는 산들이 둘러져 있고 앞에는 물길이 자리한 배산임수아닐까요?   


다음에는 다양한 왕릉의 형태와 40여기의 왕릉이 어디에 안장되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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