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지난 여름에 쏟아낸 땀줄기 휴유증이 가시질 않아선지 가끔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딸아이가 일주일 가량의 휴가를 얻을 수 있다고 하여 함께 남해 통영으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 휴가 기행을 다녀오자 마자 블로그에 정리하려고 하였는데 그때 먹은 더위로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낮에도 제법 찬기운을 띤 바람이 볼때가 되니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이 다녀온 통여 2박 3일의 여정을 반추하여 본다.
2016년 7월 25일 월요일 아침부터 푹푹 쪄대는 날씨다.
광주에서 출발한 우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바깥 기온을 무시한 채 통영으로 출발했다. 어차피 시간 구애없이 가는 여행이라 국도를 따라 여유롭게 여행길에 나섰다. 광주에서 곡성으로 길을 잡았다. 곡성에서 광양까지 섬진강 굽은 줄기 옆으로 한가로이 달리는 도로는 때로 열차길과 겹치기도 하며 나란히 달리는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드라이브 길이다.
중간중간에 찾아볼 곳도 제법 많고. 특히 봄에 하얗게 수놓은 벚꽃길과 나즈막이 이어진 비탈에 노랗게 물들어 있는 산수유가 필 적이면 더없이 아름다운 길이다.
여치 모양으로 지어진 철도박물관으로 곡성을 지나 하동으로 길을 잡았다. 오랜만에 가족여행이 설레는 마음으로 섬진강 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데 옛날 증기기관차가 두 량밖에 안되는 객차를 끌고 우리 곁을 지나간다. 재빨리 자동차 속도를 올려 사진에 담을 만한 스팟을 찾았다. 화자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올 줄 알았는데, 동력이 석탄이 아니었나보다.
증기기관차를 뒤로 하고 당도한 곳이 화개장터다. 조영남이 불러 더불어 이 곳 화개장터가 유명세를 탔는데 몇년 전에 있었던 시장 화재로 옛 정취는 모두 사라지고 새롭게 단장한 정갈한 가게들이 들어서 손님을 맞았다. 화재가 있기 전에 들렀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대장간을 찾아보니 이제는 없어졌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구례와 하동 사이에 시장 운영과 발전을 놓고 갈등이 있었는지 예전에 누렸던 활기가 덜하다고 한다.
화개장터를 지나서 조금만 내려가면 평사리가 나온다. 2007년도에도 딸아이와 거제도로 여름여행을 갔을 때 올라오면서 평사리를 들렀던 적이 있다. 서희가 별당채 툇마루에 서서 너른 들판에 서있는 두 그루 소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모습을 그리며 오늘은 토지 촬영지는 건너뛰고 저 부부송을 사진에 담기로 했다. 바둑판 논길 위로 차를 달려 부부송을 한 바퀴 돌았다. 요즘엔 최참판댁 전통 한옥 촬영지보다 저 부부송이 평사리를 대표할 정도 유명하다.
7월 25일 오후. 다음부터는 여름에 섬으로 여행을 다시 생각해봐야 겠다.
진주에서 유명한 맛집을 옛 회사 동료에게 물어 찾아가 점심을 먹었다. 우리 가족은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먹는 것에 열광하지 않아 맛에 대한 품평은 할 줄 모른다. 그저 맛있게 먹었다 정도이지, 식감을 따지고 맛을 분별하는 것이 서툴다. 대신에 나는 멋있는 경치를 담고 싶어 안달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한참을 달려 거제도 저구항에 당도했다. 가는 도중 저구항에 전화를 하여 예약 상황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소매물도로 가는 배가 정상적으로 출항을 할지 미정이란다. 오후 세시 반 출항하는 배이고, 지금 날씨다 태풍이 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얘기냐고 하니 매물도와 소매물도 일대가 짙은 안개로 덮여있어 출항여부가 유동적이란다. 하지만 한시 반 출항 예정인 배가 예정대로 운항을 한다면서 일단 항구로 오라고 한다. 수퍼에 들러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먹을거리를 장만하였다.
다행이 예정대로 배는 출항을 하고 우리는 갑판 위로 올라왔다.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조금은 재워준다. 저구항에서 소매물도까지 50분 남짓 걸리는 뱃길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갈매기다. 우리가 탄 배를 따라 계속 쫒아오고 있다. 배가 달리는 속도가 아무래도 시속 20키로는 되어 보이는데 지치지도 않나보다. 배를 악착같이 쫒아오는 목적이 따로 있었다. 배에 탄 승객 한사람이 아이와 함께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고 있었다. 아마 과자가 다 떨어질 때까지 갈매기들은 땀깨나 쏟을 기세다.
드디어 소매물도항구에 배가 도착했다. 항구라기 보다는 작은 포구다. 배에서 내리니 작은 트럭이 손님들이 들고 간 짐을 싣고 있어 우리 것도 실었다. 소매물도에는 민박이나 팬션을 하는 것 외에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모두 부두 앞에 있는 촌락이 전부다. 그나마 촌락도 아주 가파른 경사다. 가파른 경사로 짐을 끌고 올라가는 것도 힘들어 트럭이 짐을 대신 올려다 준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민박집을 찾아올라 가는데 푹푹 찌는 더위가 온 몸을 땀으로 목욕을 시킨다. 항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후박나무가 서있는 민박집에 도착했다.
딸아이는 민박집을 보자마자 투정부터 부린다. 왜 팬션을 하지않고 민박을 하였냐고.. 팬션의 화사하고 편리한 구조에 비해 민박은 공동 취사와 샤워에다가 방안도 상대적으로 퀴퀴한 분위기다. 결정적으로 에어컨이 없다. 소매물도에서 하루 밤을 묵는 일정을 잡을 정도로 볼거리 많은 섬은 아니다. 쿠크다스섬으로 건너는 바닷길이 하루에 두번 열리는데, 이번 일정에 바닷길 열리는 시간과 배 운항시간이 맞지않아서 부득이 하루를 묵게 된 것이다.
대충 집을 정리하고 쿠크다스 섬으로 향했다. 산 속으로나 좁을 돌길을 20여분 걸어가다 보면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인곳이 나타난다. 내림길을 조그만 가면 하얀 등대가 서있는 쿠크다스 섬이 눈에 들어온다. 가는 중간중간 포토 포인트가 만들어져 있어 그곳에 서서 앵글을 잡으면 멋진 쿠크다스 섬이 화각에 들어온다. 등대섬까지는 이미 바닷길이 열려있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고 있다. 지각변동으로 섬이 생긴 이래 억겁의 시간동안 바닷물은 거친 돌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 이제는 동글동글한 몽돌이 되었다. 아직도 팬션으로 예약하지 않은 거에 대한 불만을 입에 잔뜩 담고 있는 딸아이는 혼자서 씩씩거리며 걸어간다.
슬슬 배도 고파오고 하여 서둘러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준비하였다. 아까 수퍼에서 준비한 것들을 정성껏 마련하여 성찬이 차려졌다. 돼지고기 삼겹살, 깻잎, 고추장, 청양고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그리고 맥주와 소주.....
오랜만에 함께하는 통영여행의 첫날밤을 앞두고, 우리는 맛있고 푸짐한 저녁을 함께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에어컨에 익숙해져 있는 피서법이 선풍기 하나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매물도는 발전기에 의존하는 전력사정으로 팬션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단다. 그들도 선풍기가 더위를 쫒는 유일한 수단이란다. 땀과 모기와의 전쟁을 치루며 소매물도에서 하루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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