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두발로 누빈 세상/32. 즐거운 소풍

[제주도 올레길따라] 올레10코스 송악산에서 9코스 출발점인 대평포구까지

학이시습지야 2017. 11. 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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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악산 들머리부터 길이 넓어지고 포장까지 되어 있다. 송악산은 올레꾼들이 방문하는 코스일 뿐만 아니라 일반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서귀포가 자랑하는 명소다. 송악산 둘레길을 한바퀴 돌다보면 멀리 파란 쪽빛 바다 위에 떠있는 마라도와 가파도 가 보이고, 동쪽으로 이어진 긴 백사장 끄트머리에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이 가까이 보인다. 눈길을 던지는 곳곳이 모두 아름다운 경관이다. 이러니 관광객이 안오곤 못배기지 않을까.


  깍아지른 절벽 아래로 물속까지 깨끗하게 들여다 보이는 바다가 발밑에까지 들어와 있고, 활처럼 휘어져 있는 해변이 모슬포항까지 이어져 한폭의 그림처럼 멋지다. 이러한 시원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길 옆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이처럼 평화로와 보이지만 일제가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민간인을 가축 부리듯 하였을테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평범한 양민을 학살해 생매장하는 만행이 저질러졌던 상모리 들판 자락이 멀리 보인다. 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구비진 산길을 돌아나와 계단길을 올라가니 망망대해 납작히 엎드려있는 가파도가 나타난다. 올레길 10-1코스로 다음번 올레길 순례에 반드시 포함시켜야할 섬이다. 우리는 손바닥 위에 가파도를 올려놓기도 하고 계단에 앉아 가파도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면서 한낮의 제주도를 만끽했다.여기부터 송악산 날머리까지는 별로 멀지 않다. 송악산 둘레길이 거의 끝날 즈음은 다시 언덕으로 이루어져 마지막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이내 내리막이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진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마라도로 달려가는 여객선이 푸른 바다를 가르고 있다. 멀리 송악산과 형제섬, 그리고 서귀포가 있다.


  송악산을 내려와 해안도로를 따라 용머리해안까지 걸어가는 길 위에서 연신 형제섬을 힐끗거리며 걷는다. 저멀리 보이는 용머리해안과 삼방산이 아무리 걸어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다보니 지루지기까지 한다. 다소곳이 열을 지어 밀려와 부서지며 쏴~~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팍팍해진 다리에 피로도 풀겸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발바닥을 간지르는 모래가 파도에 휩쓸려 바닥을 후벼낸다. 5월의 바다물은 참 시원하고 또, 따스했다.


  금발의 중년 아주머니가 바다에서 건져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놓고 서로 흥정을 벌이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아내에게 이 조형물 속으로 들어가 함께 흥정해 볼것을 청했다. 육지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다. 직거래는 넉넉한 인심 속에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가 이득이다.


  특히나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처럼 1차 산업군에 속하는 물품을 거래할 때는 중간 상인이 끼어있다. 이들에게 입도선매, 매점매석, 이득착취등 결코 상거래에서 좋은 의미를 내포한 단어들이 별로 없다. 이는 반대로 보면 구매하는 최종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중간상인의 농단에 피해를 보는 것이다. 물론 모든 거래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이들의 순기능은 우리가 사는 인근 가게에서 소매로 사는 꽁치며, 알타리, 배추, 무우등을 손쉽게 구매해는데 있다. 다만 물건이 품귀현상을 보이거나 가뭄이 들면 이들은 많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행위가 왕왕 벌어진다. 


  도시의 찌든 생활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은퇴세대가 많이 늘어난다고 한다. 아내도 시골집에 텃밭을 가꾸며 노후를 보내는 것이 도회지 생활보다 훨씬 나을거라 한다. 헌데 난 그게 싫다. 촌놈인 나는 농사일이 무척 서툴다. 부모님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고추도 따고, 콩밭도 메고, 고구마 넝쿨을 걷어내는 게 정말 힘들고 싫었다. 살을 태울듯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앉은키만큼 자란 콩밭에 들어가 풀을 맬라치면 울창한 콩줄기에 덮여 그 안으로 말그대로 한증막이다. 지금이야 대부분 비닐을 덮어 풀매는 수고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지력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짓는다.


 오늘 우리가 찾아갈 식당은 '남경미락'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나, 큰동서내외와 우리 식구가 제주도 여행을 와서 맛봄 다금바리는 지금도 입안에서 군침이 돈다. 회는 물론 딸려나오는 온갖 종류의 싱싱한 해산물 먹거리에 제법 값이 나가는 음식값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 오늘 배고픔을 참아가며 찾아왔는데 점심시간이 지나 저년 준비시간이라 음식이 안된다고 한다. 사정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접고 인접한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쉬음을 뒤로 한 채...

 

  해안단구처럼 깍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용머리해안길로 들어섰다. 갓잡아올린 해산물을 좌판에 깔아놓고 매상을 올리는 해녀부터 신기한 형상을 절벽을 감상하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나아갔다. 삼방사쪽에서 바다로 쭉 목을 늘어뜨리며 길게 누운 용의 형상을 한 용머리 단구를 위에서가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이다. 원래 올레길은 삼방산 뒤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꼭 올레길 위로만 걸어야 하는가? 때로 합리적인 일탈이 여행의 묘미지 않은가.. 


  마치 공룡이 언제가 지구를 지배할 인간에게 흔적을 남기듯 해안길을 걸었다. 산방산 앞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가다보면 올레 10코스 출발점인 화순금모래해변이 나온다. 아침에 모슬포공원에서 시작한 10코스 올레길은 여기 화순금모래해변에서 마무리하였다.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있어 비교적 짧은 9코스까지 마져 걷기로 하였다.


 올레길 9코스는 위에 지도처럼 다른 코스에 비해 짧다. 하지만 이코스를 통과하기는 만만치 않다. 여타의 올레길이 해안길이나 마을길로 이어져있지만 여긴 산을 올라야 한다. 물론 등산수준은 아니더라도 제법가파른 곳도 간간히 나온다. 그리고 어른 키를 덮을만한 잡풀들이 올레길 주변을 에워싸는 곳도 있어 올레길 사무국은 관리하느라 애를 먹을것 같았다. 사진에 나오는 산아래 너른 밭을 휘~돌아 올라오는데 제법 땀을 뺐다. 월라봉이 그다지 높아보이진 않아도 산은 산이다. 속도를 내어 걷기보다는 산행을 하는 수준의 올레길 순례다. 


  날이 저물 무렵이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 세졌다. 바람에 기대어 마구 몸을 흔들어 대는 밀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듯하다. 해는 이미 서쪽바다로 기울어 땅거미가 기어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 길 오른쪽은 깍아지른 절벽이다. 잠시 몸을 굽혀 내려다볼라치면 소름마져 돋는다. 


 대평포구에서 올려다본 볼레낭길이다. 마치 바위를 칼로 베어낸 듯이 뚝 잘려나간 형상이다. 말이 다니던 길이라는 몰질로 볼레낭길을 내려오니 자그마한 대평포구다. 올레스탬프를 찍어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지친 발검음을 옮겼다. 오늘 하루도 무척 된 고생을 하였으니 푹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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