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두발로 누빈 세상/32. 즐거운 소풍

[제주도 올레길따라] 아이폰수리로 시간허비하고 올레길 8코스 중문까지

학이시습지야 2017. 11. 1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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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8일 아이폰 고장수리차 제주시를 왕복하느라 한나절을 허비하다

  사실 여행 둘째날 저녁에 숙소에서 정품이 아닌 비품 충전케이블을 사용하여 폰을 충전하느라 케이블을 연결하고 얼마 안있어 폰 접점 부위가 부풀어오르더니 파란 연기마져 피어올랐다. 얼른 폰에서 케이블을 분리하고 방으로 올라가 정품 케이블을 꽂았으나 이미 액정이 죽어있어 까만 창이 요동도 하지 않는다. 폰이 일시적으로 뜨거워졌다고 판단해 식힌 다음 연결을 해봐도 변화가 없다.  휴게실의 데스크탑에서 폰수리점을 찾아보니 KT아이폰은 제주시에만 있다. 이미 근무시간을 훨씬 넘긴 시각에다  다음주 월요일까지는 연휴로 수리점이 문을 닫을 것이다. 앞으로 며칠간은 디지털 암흑 속에서 지내야 한다. 장장 나흘동안 디지털과 헤어져있어야 할 운명. 


   아침 일찍 제주시내로 나가 KT수리점을 찾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나갔나 보다. 도착한 시각이 9시가 조금 넘었을 때인데 수리점은 10:00에 문을 연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인근 지역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근처에 제주목 관아와 존덕정이 있었다. 문화유산해설사라면 당연히 가봐야 하지않나. 멀마정도 걸어가니 이내 관아 정문이 나왔다. 헌데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월요일은 휴관이란다. 가는 날이 장날이 꼴이다.

  하는 수 없이 군사훈련장인 정문 앞에 제법 규모있게 서있는 관덕정으로 갔다. 3층으로 된 기단 위에 나지막한 높이로 지어진 전각에 올라 잠시 마루에 걸터앉았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게 더 나을 듯 싶었다. 전각 천장과 사방에 그려진 그림과 글을 띄엄띄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수리점이 엺 시간에 맞추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수리점이 열리자마자 올라가서 수리 여부를 물으니 여기서는 고칠 수 없고 서울 본사에 보내서 진단을 받고 난 뒤에 리퍼로 교환하든 수리를 할 수 밖에 없단다. 아침 일찍 서귀포에서 여기까지 와서 그것도 한참을 기달려 얻은 딥변이 고작 기다려야 한단다. 더구나 제주에 맡기고 나서 진단이 나온 뒤에 다시 찾러 와야 한다니! 그럼 내게 폰을 찾으러 나중에 다시 오란 의미?

  하는 수 없이 먹통이 된 폰으로 서울에 가서 임시폰을 받을 때까지 연락두절로 살아야 한다. 아이폰을 사용한 내가 그 원죄다. A/S가 전국적인 망을 구축헤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내폰을 놔두고 애플을 선택하였으니 그 불편함은 감수하야지. 이런 경우 고객이 갑이 아니고 한없이 힘없은 을이다. 외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주저없이 불편을 감내하는 이상한 소비행태. 이참에 국내폰으로 바꿔볼까하다가도 손에 익은 스마트폰이라 쉽게 손바뀜이 되질않는다. 어플 상호간의 인터페이스나 정갈하게 전돈된 메뉴들이 우선 잘 짜여진 프로그램처럼 일목요연하여 난 애플을 선호한다. 


2017년 5월 8일 오후 올레길 8코스 월평에서 중문까지 걷다.

  숙소로 돌아와 다시 올레길을 이어걷고자 아내와 버스를 탔다. 맑았던 날씨는 뚜꺼운 구름이 하늘을 모두 덮었다. 흐린 날씨에 올레길을 걸으려니 상쾌하지는 않다. 월령아왜낭목에 있는 중간 스탬프지점에서 시작한 8코스는 중문단지와 주상절리까지가 하이라이트다. 며칠째 강행군에 몸도 지쳐있고, 올레길을 하염없이 걷는 즐거움이 이제는 해야만 하는 노동처럼 느껴진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여 오늘 숙소 주변으로 이어진 올레길을 걸어가면서 지금까지 올레길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고,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이사장은 시사저널에 몸담으면서 저널리즘에 충실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열정을 모두 쏟아부었건만 돌아온 건 극도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이었다. 황폐할 데로 폐허가 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인생을 이끌고 갈 힘을 얻기 위해서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을 찾았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종주하면서 어느  순간 고향인 제주도 고향마을 집 사이로 난 동네길이 떠오르면서 이 길들을 이어서 제주도를 한바퀴 쭉~~ 돌아볼 수 있지 않을 까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동리길을 벗어나 해안에 명승절경도 연결하고, 오름도 연결하고, 곶자왈도 연결하면 제주도 속살도 보여주고 제주도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아이디어까지 구상하였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서명숙이사장은 머뭇거릴 시간없이 바로 제주도로 내려가 뜻을 같이 할 사람을 모아 올레길 개척을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고 여유롭게 올레길을 순례할 수 있는 것이다. 문득 올레길을 개척하신 그분들의 노고와 헌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지 못해 부끄러웠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답과 보상을 바라지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희생을 해 온 적인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아직까지도 그런 마음이 자리잡지 않고 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최소한 땀과 노고를 쏟은 그분들의 희생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약천사길을 지나면 다시 바다에 연해있는 올레길로 접어든다. 아름답게 조성한 길은 대포주상절리까지 이어진다. 돌로된 탁자와 의자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으면서 쉬어갈 수 있고, 길 옆에 예쁜 꽃들을 가꾸어 놓은 구역도 있어 한결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등나무 터널을 만들어 마치 터널을 통과하는 순례열차가 되어보기도 한다.



  바다로 연한 올레길이 준문관광단지로 이끄는 초입에 씨에스 호텔이 있다. 본건물은 현대식 모양을 갖추었지만 부대시설과 주변 조경을 우리 전통 토속을 가져다 꾸며놓았다. 이엉으로 덮여있는 첫집과 전통 식당 그리고 그 앞에 넓직한 잔디밭에는 제주도 토박이 꽃과 나무로 조경을 예쁘게 꾸며놓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여기서 한요기 하고 가는건게...


  중문에서 8코스 순례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서귀포월드컵 경기장으로 이동하였다. 2002 한일월드컵 경기에서 터키와 3,4위전 경기를 바로 이곳에서 아내, 아이들과 제주도에 놀러와서 관람한 기억을 다시금 되새기고자 찾아왔다. 어느핸가 태풍으로 지붕이 망가져있는 모습을 여행 왔을때 본 적이 있다. 오늘 우리가 찾았을 때는 K-리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제주팀의 앰블럼과  CI색상을 이쁘게 단장되어 있다. 그날 비록 터키에게 져서 4강에 만족하여야 했지만 16강전 첫경기부터 3,4위전에 이를때까지 온국민을 환희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함성이 지금도 생생하다. 


  경기장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매표소 앞에서 은퇴하신(?) 중년신사가 섹스폰을 연주하고 계신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들어보니 이제 한창 배우고 계시는 분인 거 같다. 음정이 맞지않거나 탁음이 가끔씩 나오는 걸보니 황혼기에 접어든 인생 추수기에 가만히 소일하는 것보다 자기가 평소 소망하였던 취미나 재주를 갈고닦아 무료한 일상에 활력을 불러넣고픈 마음에서 과감히 섹스폰을 선택하셨나보다.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곤 하지만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이 더 많다. 사진도 더 배우고 싶고, 자전거로 아시아 일주도 하고 싶고... 하지만 아직은 일을 하여야 한다. 최소한 60대 초반까지는 근로에 시간을 더 쏟아야 할 거 같다. 그 이후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픈 게 무엇인지 분명해질 거 같다. 저분처럼 사람들이 듣고 있거나 말거나 열심이 연습하는 모습이 참 멋있어보인다. 


  비교적 짧은 올레길 7-1 서귀포경기장에서 서귀포올레센터 구간을 적당히 걸어보면서 이번 여행에서 올레길 순례를 마무리하였다. 5월 3일 제주로 내려와 저녁에 구럼비바위를 지키려는 강정마을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걸어놓은 구호 사이를 지나 켄싱턴 호텔까지 걷는 걸 시작으로 3코스 중간 두모악에서 제주 서쪽 끝에 있는 10코스 끝자락 모슬포항까지 제주도 서귀포 구간을 거의 마무리하였다. 올겨울 아내 생일에 맞추어 다시 제주로 내려와 잠시 중지된 올레길 순례를 이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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