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리고 물류
지구상에 인류가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자급자족의 시대를 거쳐 청동기 문화로 접어들면서 잉여물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잉여물자를 도구로 사용하거나 부족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전쟁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전쟁은 전투능력이 승리를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보급로 확보가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러 전쟁 문헌을 통해 익히 알 수 있다.
우리 역사 속에 사례로 얼마 전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명량과 드라마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징비록의 배경무대인 임진왜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파죽지세로 부산포를 점령한 지 18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평양성을 노릴 때까지 왜군은 전쟁 물자 보급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에서 평양에 이르는 긴 보급로에다 진주성에 막혀 조선의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을 지나쳐 버렸기 때문에 식량과 전쟁물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더구나 보급품을 선박으로 운송하려는 계획이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게 가로막혀 한양에서 평양서 공격과 의주로 도주해 있는 선조를 잡아 조선을 무너뜨릴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결국 왜군은 초반의 질풍같았던 기세가 꺾여 장기전에 돌입하다가 결국 패퇴하고 말았다. 역사 속에서 보급로와 전쟁물자 확보에 얽힌 얘기를 풀어보자.
알렉산더대왕 - 물류를 통해 18,000km의 원정을 가능케하다.
기원정300년경 예상치 못한 전략과 신속한 기동으로 광범위한 영토를 점령한 알렉산더대왕(BC 356~323)의 승리의 비결은 물류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 기실은 부친 필리포스2세의 기틀을 잡아놓은 물류체계를 더 정교하게 개발하여 운용하였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부친 필리포스 2세는 당시의 인접국인 그리스나 페르시아와 다른 군대를 운영하였다. 즉 당시에 일반화 되어있던 원정길에 배우자와 노예까지 동반하다보니 그들이 숙식할 물자까지 원정길에 함께 가지고 이동하여야 했다. 하지만 필리포스 2세는 참전한 군인이 스스로 자신의 장비와 보급품을 가지고 기동하도록 함에 따라 군의 기동성이 상대군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부왕의 기동성을 갖춘 군대를 이어받은 알렉산더 대왕는 보급품을 신속하게 운송하기 위해 당시 일반적인 육상운송 대신 해상운송 기술을 활용하였다. 대부분의 국가가 전투를 위한 전함을 주로 건조하다보니 수송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착안한 알렉산더대왕은 물자 수송용 선박을 확보하여 물자나 군마를 대량으로 운송할 있었다. 한편 내륙지역을 점령할 때는 적의 군수품 위치와 지형, 기후, 이동경로와 도로상태 등의 정보를 토대로 정예병력을 투입하는 기습공격으로 적의 물자를 확보하였다. 즉 정보의 가시성을 통해 선제적으로 물자를 확보하는 물류 전술을 기원전에 적용한 사례다.
이처럼 물류는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에 가장 중심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아 8년여 동안 인류역사에서 가장 긴 18,000km의 원정을 수행할 수 있었다.
관도대전(官渡大戰)과 읍참마속(泣斬馬謖) - 삼국지 속의 물류 이야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적벽대전과 함께 삼국지에서의 3대 전투중 하나인 관도대전은 삼국시대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전투였다. 하북지역을 놓고 패권을 다투던 조조가 원소가를 꺾고 중원을 차지하여 바야흐로 삼국시대의 한 축으로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된 전투이다. 70만의 대군을 거느린 원소가 겨우 3~4만명의 군사를 가지고 있는 조조가 진을 치고 있는 관도에서 대치하여 지구전을 펼치고 있었다. 원소 휘하의 책사 허유는 자신을 비리를 만회키 위해 원소에게 전략을 진언하지만 이를 거절당하자 조조에게 투항하여 원소군의 보급로와 군량미를 저장하고 있는 오소에 대한 기습방안을 제시하여 성공을 거두게 했다. 원소는 군량의 지키는 막중한 힘무를 전장에서 용맹을 떨친 순우경에게 맡겼는데, 순우경은 나같은 용장에게 늙었다고 한낱 군량미나 지키라 명한 원소를 원망하며 경비를 소홀히 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허유의 간책을 받아들인 조조군의 기습에 허망하게 당하고 말았다. 결국 70만이 먹을 군량을 잃은 원소는 중원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숫적 우세도 결국 물류창고를 잃고나면 그 힘을 스스로 잃고 말았다.
읍참마속, 제갈량이 눈물을 뿌리며 장수 마속을 참수한다는 고사성어다. 북벌을 위해 출사표를 던진 제갈량의 촉군은 기세등등하게 연승을 이끌어가다 조조의 군대와 대치를 하게 된다. 제갈량은 촉군 군수물자의 허브로 선택한 가정(街亭)이라는 작은 마을수비를 누구에게 맡길지를 고심하였다. 가정은 촉나라의 중원 진출에 핵심이 되는 물류거점으로 이 곳을 잃으면 모든게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던 마속이 자원하여 나섰다. 제갈량은 마속에게 조조군의 사마의 상대로는 부족하다는 판단하에 절대로 선제공격 하지말고 협곡 입구만 굳건히 지킬 것을 명한다.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산기슭 협로를 지키라는 명을 어기고 전공을 세우려고 산 위에 진을 치고 사마의와 일전을 도모하는데 이를 간파한 사마의는 공격은 하지않고 산 위에 진을 친 마속의 군대가 식수와 군량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 이에 조금해진 마속은 선제공격하다고 결국 조조군에게 패퇴하고, 재갈량의 중원도모도 꺾이고 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물류 거점도시 "성시(城市, Burg)
로마시대로 접어들면서 기동전술에 더하여 물류 인프라를 활용하게 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로마제국은 영토확장에 군사 거점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하여 물자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하지만 제국의 쇠락과 함께 점령지역 약탈을 통해 식량과 물자를 수급하는 원시적인 수준으로 퇴보하였다.
다시 중세 봉건주의로 접어들면서 동로마제국의 샤를마뉴대제(Charlemagne, 740~814)는두가지 새로운 병참전략을 도입하였다. 첫번째는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전담 수송하는 병참조직을 만들어 전쟁을 수행하는데 수천키로 떨어진 곳까지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군수 물자를 수송하였다. 둘째는 봉건영주들의 거점인 성시(Burg)를 분산형 물류네트워크 배송기지로 활용하였다. 샤를마뉴대제는 동시에 성시를 전방의 요새화된 군 주둔지로 활용하고 성시사이를 이어주는 도로망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정리하면 동로마제국은 봉건영주의 성시를 전략기지화 하고 성시 사이를 서로 연결하여 물류 및 통신이 가능케하는 병참 전략을 도입하여 운영하였다. 오늘날의 권역별 물류센터를 건립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과 유사하다.
간편진열포장의 원조, 칭기스칸,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수세기동안 지배한 몽고제국이 어떻게 짧은 기간에 넓은 영토를 침략하고 통치체계를 확립하였는지 알아보자. 몽고는 도로를 개척하여 병참을 운용하는 로마제국과 달리 애초에 길이 없는 드넓은 초원을 말을 타고 누비며 유목생활을 하는 배경을 바탕으로 고유의 독특한 물류기법을 발전시켰다.
군의 편제는 몽고준마를 활용한 기병이 주축을 이룬다. 병사 1명에게 5필의 준마가 지급되고, 각각의 말에 군수물자를 나누어 싣고 기동을 한다. 따라서 별도의 병참부대는 필요없다. 말의 먹이와 군용 식량은 초원의 유목생활에서 익숙한 양고기를 말린 육포 형태의 보르츠를 활용한다. 말린 양고기를 소의 방광에 넣어 필요할 때 데운 물에 간단히 불려 먹는 형태로 오늘날 대형 할인점에 적용되는 간편진열포장(Retail Ready Packaging)의 원조격이다. 이렇게 준마와 간편 포장의 식량을 바탕으로 빠른 기동성으로 아시아와 유럽에 이르는 광대한 대륙을 점령할 수 있었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을 통해서 오늘날의 물류와 유사한 보급로 확보 및 병참역할이 전쟁과 전투 성과에 밀접하게 작용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더우기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증기기관과 함께 다양한 수송 수단이 발명되었다. 두차례 치른 제1,2차 세계대전은 철도, 선박에 의한 운송이 항공운송까지 다양한 운송수단을 조합하여 이전보다 다양하고 신속하고 쳬계적인 물자 수송이 가는케 했다. 전쟁이 끝나고 전투인력이 빠져나간 자리에 병참을 담당하던 인력들은 남은 전장처리 과정에서 또다른 물류기법 적용을 고민하게 된다.
- 출처 : 민정웅 저 미친 SCM이 성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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