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경험에서 과학으로 - EOQ 모델 등장
전쟁이 물류를 경험을 통한 직관적 판단의 영역에서 발전시켰다면,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서히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과학의 영역으로 상장하게 만들었다. 1913년 웨스팅하우스의 전기설비기사인 포드 해리스(Ford W. Harris)는 'HOW MANY PARTS TO MAKE AT onCE'라는 논문을 발표할 당시 EOQ모델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인 그는 웨스팅하우스에 근무하며 70여 편의 논문과 50여 개의 특허를 출원하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법률회사에 들어간 뒤 변호사 시험에 합격, 결국 특허 전문변호사로 성공하였다.
그 이후 EOQ모델은 컨설턴트인 윌슨(R.H. Wilson)에 의해 널리 알려진 후 Wilson Model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EOQ모델은 재고비용과 주문비용을 고려하여 공급업체에 발주할 최적의 주문량을 계산하는 계량모델이다.
EOQ = √(2*연간수요량*1회 발주비)/재고유지비용 = √(2*D*S)/H(I*C)
(D : 연간 판매수량, S : 1회주문비용, H : 재고유지비용 = I (제품 1개당 단가) * C (제품 1개당 유지비용, 즉 이자비용. 창고비용등)
예를들어, 일년에 10,000개를 판매하기 위하여 100원짜리 포스트잇을 구매한다면 (1회 발주비는 직원의 인건비중 5,000원이 소요되고, 은행의 이자와 전체 창고비용중 개당 유지비용을 계산하니 3% 정도 추정된다) 몇개가 경제적인 발주량인가?
EOQ = √(2 x 10,000 x 5,000) / (100 x 0.03) = √(100,000,000 / 3) = 5,773 => 6,000개가 된다.
1952년 탄생한 Barcode
1948년 필리델피아 드렉슬 공과대학 대학원에 다니던 버나드 실버(Bernard Silver)는 푸드체인 사장과 대학원 학장의 대화에서 '계산대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정보를 자동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해달라'는 내용을 엿듣게 된다. 학장은 기술적 어려움으로 거절하지만 버나드는 대학원 동기생 노만 우드랜드(Norman Woodland)에게 털어놓았고, 우드랜드는 이 문제에 폭 빠져버렸다.
우드랜드는 그 당시 존재하는 두가지 기술을 혼합하여 바코드를 탄생시켰다. 영화필름에 음향을 덧붙이는 사운드트랙(soundtrack)과 무선암호통신기술인 모르스부호(Morse Code)를 혼합하여 모르스부호의 점과 선을 아래로 죽 늘려서 막대를 만들었고, 영화필름에서 소리를 재생하는 모듈울 응용하여 굵은 바(Bar)를 통해 통과하는 빛의 양에 따라 정보를 인식하는 형태의 바코드를 만들었다. 그는 아이디어 제공한 실버와 공동으로 1952년 특허를 출원하였다. 이 특허권은 여러회사를 거쳐 1970년 로지콘(Logicon)사가 오늘날의 UPC(Universal Priduct Code)와 유사한 데이터 표준안을 만들어 제품별 고유 일련번호를 붙일 수 있도록 하였고, 마침내 1974년 6월 오하이오주 마쉬 수퍼마켓에서 리글리(Wrigley)사의 10개들이 껌이 바코드를 통해 스캔되면서 유통혁신의 서막을 열었다.
1956년, 조그만한 박스에 세상을 집어넣다. - 컨테이너 운송의 시작(Ideal-X호)
오늘날의 컨테이너 원형은 1780년대 영국에서 석탄을 철도로 운송하면서 부터다. 이렇게 시작한 컨테이너 운송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송선에서의 상하역을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Transporter라는 박스형태의 컨테이너가 도입되고, 한국전쟁에서는 도난방지와 내구성을 위해 철제로 제작되었다. 이윽고 1952년 미 육군은 코넥스(Container Express)를 통해 내륙의 철도와 해양운송 선박을 연계하는 복합운송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당시 조지아에서 부산까지 55일 걸리던 운송시간이 27일로 단축되어 한국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 공급이 신속해졌다.
복합운송의 성공을 주시하던 트럭운수화사 대표인 말콤 맥린(Malcom McLean)은 육상과 해상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컨테이너에 다단적재가 될 수 있도록 고정장치를 부착하여 2.5mm 두께의 철제 컨테이너 특허를 출언하였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운송할 선박용으로 유조선을 개조하였다. 적재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시에 일반적인 RO/RO(Roll-in/Roll-out, 차량으로 상하역 하는 방식) 방식을 버리고 LO/LO(Lift-on/Lift-Off,리프트를 이용하여 컨테이너를 수직으로 이양하는 방식) 방식을 적용한 최초의 컨테이너선은 말콤 맥린은 'Ideal-X' 라 명명하고 1956년 4월 뉴왁에서 58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휴스턴으로 운송하는 처녀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실 말콤이 제작한 컨테이너는 전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제각각이었던 컨테이너를 트럭, 철도, 선박에 자유롭게 호환될 수 있도록 규격화하고 표준화를 하여 당시 톤당 $5.86달러인던 상하역비용을 16센트로 떨어뜨리게 되는 혁신을 이루었다.
1979년, FedEx의 화물정보 추적시스템
" 미래에는 화물 그 자체만큼이나 화물의 정보가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 페덱스를 설립한 프레더릭 스미스(Frederick W. Smith)회장이 1978년 정보의 가시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79년 스미스회장은 물류 역사상 최초로 화물의 운송상태와 위치, 경로를 추적해주는 COSMOS(Customer Oriented Service and Management Operating System)를 개설하였다.
예일대 경제학과를 다니던 스미스회장은 점차 전자화, 소형화되어 가는 제품의 증가로 돈보다는 시간의 가치가 더 중요할 것이라는 판단에 기반하여 항공운송의 증가를 예측하였다. 이러한 예측에 바탕으로 모든 화물을 한 곳에 집하한 다음 개별 목적지로 분배하고 운송하는 방안인 Hub and Spoke 개념을 예일대 경제학과 기말레포트로 제출하였다. 비록 담당교수는 C학점을 주었지만 스미스회장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업에 직접 활용하기 위하여 1971년 상속받은 돈을 자본금으로 하여 FedEx를 설립하였다. 1973년 4월 멤피스에 중앙집하장을 중심으로 25개도시로 연결되는 Hub and Spoke네트워크를 타고 14대의 항공기에 화물을 배송하게 된다.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적자를 기록하였으나 1976부터 흑자로 돌아섰고, 1977년 규제로 묶여있던 항공산업 규제가 완화되면서 대형항공기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화물추적의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해 1977년 개발에 착수한 COSMOS가 1979년 IBM컴퓨터에 탑재되어 현장에서 활용하게 되었다.
- 출처: 민정웅교수 저, 미친 SCM이 성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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