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의 궁궐실) : 궁궐의 내력을 알려주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네..
조선은 개국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한양을 새 도읍으로 정하고 정궁인 경복궁을 준공하여 1395년 천도를 하였지요.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으로 위상을 가지고 있는 한편, 창덕궁과 창경을 이궁으로 삼아 200년의 역사를 누렸으나 임진왜란으로 한양에 있는 궁궐이 모두 소실되고 말지요. 전란이 끝나고 환도한 왕실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과 창경궁을 중건하여 법궁으로 삼고, 경희궁을 새로 지어 이궁을 삼았지요. 왕권을 다시 세우고자하는 대원군의 주도로 경복궁이 다시 중건되어 법궁의 자리를 되찾게 되지요. 궁궐실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통하여 궁궐의 역사와 내력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궁궐지 : 조선시대 궁궐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물로서 각 전각별 위치와 그 곳에서 펼쳐진 중요한 정치 문화적인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시된 자료는 숙종조에 작성된 것을 헌종 대에 증보한 것입니다.
경운궁 현판 : 덕수궁 옛 이름인 경운궁의 현판으로 고종의 어필입니다.
경운궁 현판 | 보개 |
보개 (용무늬 천정장식) : 보개는 어좌 천정에 설치되어 있는 장식물입니다. 왕권을 상징하는 용이나 봉황같은 상상의 동물들이 새겨져 있으며 보개가 장식되어 있는 공간은 곧, 왕의 공간임을 뜻하지요. 보개는 돌아가신 왕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는 진전에도 장식되어 있습니다.
경회루에서 출토된 청동용 : 1997년 경복궁 내 경회루 연못 준설 작업을 하던 중에 건져올린 유물입니다. 1867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불에 취약한 궁궐의 화재 예방을 위해, 불을 다스린다는 용을 청동으로 조각하여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한마리는 아직 찾아내지 못하였다니, 언제쯤 세상에 나와 빛을 볼런지요..
사실 우리의 궁궐은 목재가 주 건축재료다 보니 화재에 항상 취약해있습니다. 하여 궁궐을 지으면서 화재를 방지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각 궁궐의 정전에는 화마를 막기 위해 방화수를 담아놓는 드므를 설치해 놓았고, 전각 곳곳에 불을 막아준다는 龍이나 水를 새긴 부적이나 장식을 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 앞에 서있는 해치도 관악산에서 뻗혀오는 화기를 막아서고 있잖아요.
[龍 글자로 만든 물 水자 부적] [은판에 물 水자를 그려넣은 장식]
동궐도 : 국보 제 249호로 지정된 동궐도는 183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6첩 병풍으로 제작된 동궐도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서 창덕궁과 창경궁을 둘러싼 산세며, 궁담, 전각, 재실, 정자는 물론 당시에 사용되던 기구들이 놓여있는 모습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림에는 환경전이 온전히 남아있되, 1828년 건립된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이 없는 것으로 보아, 1824년 경복전이 소실된 후 1828년 연경당이 건립되기 이전까지의 기간 중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2.(조선의 왕실실) : 격조를 갖추었으되, 결코 화려하지 않은 가구와 의복
이곳에서는 격조 높은 왕실의 생활상과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을 위해 만든 의복과 음식, 각종 기물 등은 당대 최고의 장인에 의해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지요. 그러나 사치를 금하고 국왕이 몸소 검약한 생활을 실천했기 때문에 궁중의 생활 물품에는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보다는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왕실용 가구는 일반 가구들에 비해 크기가 크고 가구 표면을 붉은 색으로 칠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붉은 칠은 일반 민가에서는 사용을 금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던 것으로, 왕실용 가구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왕을 위한 밥상인 수라상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질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왕실의복은 지위와 역할, 그리고 존엄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왕과 왕비의 예복은 신발부터 관모冠帽와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정해진 법식에따라 제작되고 착용되었습니다.
왕이 입었던 의복의 종류 : 곤룡포와 익선관, 구장복(면복)과 면류관, 강사포와 통천관이 대표적인 왕의 복장입니다.
곤룡포와 익선관 : 익선관과 곤룡포는 왕이 편전에서 신료들과 국정을 의논할 때 왕으로서 입었던 평상복이었습니다. 국정을 처리하는 낮시간에 주로 편전에서 있었야 했던 왕이였기에, 이 옷을 착용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습니다. 검은색의 익선관은 원유관과는 비슷하지만 모자 중간에 꿴 옥비녀가 없는 대신 모자의 윗부분에 두 개의 뿔 모양 장식을 부착하엿습니다.
익선관의 뿔 모양은 메미의 날개를 상징한 것으로, 이슬을 먹고 사는 매미의 청렴과 검소를 본뜬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곤룡포는 강사포와 색은 같으나 양 어깨와 가슴, 등쪽에 황금색의 실로 수놓은 용무늬를 붙였습니다. 곤룡포라는 이름은 용무늬를 수 놓은 옷이란 뜻입니다. 무늬에 있어서는 왕의 곤룡포에는 용 발톱이 다섯개인 오조룡을 수놓았으며 왕세자의 곤룡포에는 용 발톱이 네개인 사조룡을 수놓았습니다.
구장복과 면류관 : 면류관과 구장복은 하늘과 지상 최고의 신을 영접하기 위한 왕의 최고 예복으로써 대례복이라고도 합니다. 이 의복은 주로 왕이 중국의 칙사를 영접할 때나 종묘사직에 제사를 올릴때 그리고 즉위식과 혼인식 등에 입었습니다 하늘을 대신하는 중국천자와 조선의 국권을 상징하는 종묘사직의 신은 왕이 받들어야 할 최고의 신이였기에 즉위식과 혼인식에 면류관과 구장복을 입는 것은 하늘과 종묘사직의 신에게 즉위와 혼인을 허락받는다는 의미에서 입었습니다.
이 면류관과 구장복을 입을 때는 몇가지 장신구가 첨가되었는데요. 가슴에서 무릎까지 드리우는 앞치마 형태의 폐슬이 대표적입니다. 폐슬은 왕이 제사 올림에 무릎을 꿇을때 옷이 젖는 것을 막기 위한 가리게로 하의와 마찬가지로 붉은색이었으며 쓰인 문양도 구장복과 같았습니다. 또한 허리에 수(綬)와 패(佩)를 찼는데 수는 붉은색의 실로 짜서 허리 뒤쪽의 대에 늘어뜨렸고 패는 옥으로 길게 만들어 늘어뜨렸던 장신구입니다.
[ ① 구장복 ②방심곡령 ③상(裳), ④폐슬 ⑤패옥 ⑥ 대대/후수]
강사포와 통천관 : 강사포와 통천관은 신하들로부터 조회를 받거나 일본 사신을 접견할 때 입었던 예복으로써 면류관과 구장복보다는 그 품격이 낮았습니다. 통천관은 면류관과 달리 면판과 류가 없는 대신, 윗쪽을 사모처럼 만들고 모자의 중간에 옥으로 만든 비녀를 꽂았습니다 여기에 함께 입었던 강사포는 구장복과 같았지만 문양이 없고 원유관과 같은 붉은색으로서 색상이 단일한데서 이 원유관과 강사포의 멋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적의 | 홍원삼 |
왕비의 복식으로는 대례복으로 홍원삼이나 적의를 입었고, 평상복으로는 당의가 있습니다. 박물관에 영친왕비 적의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즉위식이나 혼인식같은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 입었지요. 적의는 고려말 공민왕때 명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조선말까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붉은 비단으로 직조되었으나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선 황제국의 지위에 맞게 짙은 청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비단을 짤 때 화목과 해로를 상징하는 꿩무늬를 함께 넣었기에 적의(翟衣)라고 합니다.
대홍원삼은 지위에 따라 색을 달리합니다. 황후는 황원삼, 왕비는 홍원삼, 세자빈은 자적원삼, 공주나 옹주는 녹원삼을 착용합니다. 녹원삼은 일반백성이 혼례를 치를 때 딱 한번 입을 수 있었지요. 대례복을 입을 때는 장신구의 일종인 노리개로 멋을 한층 더하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노리개로 산호, 쌍나비, 불수를 낙지발술에 연결한 대삼작 노리개입니다.
3. (왕실의 의례실) 유교의 규범에 충실한 국조오례가 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지지하였네.
조선은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하여 운영된 국가로 ‘예禮’가 최고의 권위와 타당성이 있는 규범 질서이자, 각종 국가 통치 제도와 백성의 생활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장치였지요. 성종조에 완성된 '국조오례의'는 조선왕실의 권위를 지켜주는 의본 의례서가 되었습니다.
오례는 종묘사직과 산천에 제를 올리는 절차를 규정한 길례(吉禮), 궁중의 혼례와 명절에 임하는 예법을 정리한 가례(嘉禮), 국외 사신들을 접대하는 빈례(賓禮), 열병이나 군대의식을 규정한 군례(軍禮) 마지막으로 국장의식을 규정한 흉례(凶禮) 로 되어 있습니다.
의례실에는 오례에 사용된 기록이나 집기류등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명종의 태실 모형입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권강화와 유지를 위하여 임신초기부터 엄격한 태교를 하는 한편, 궁궐에 산실청을 임시로 설치하여 출산에 대비하였지요.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반과 탯줄을 태항아리에 담아 명당자리에 안장하였습니다. 이는 왕손의 태를 제대로 관리함으로서 왕손의 미래와 나라의 앞날이 번성하리라 믿었지요.
태항아리는 크게 내항아리와 외항아리로 구성됩니다. 태항아리가 묻혀있는 태실모형 중에서 서산에 있는 명종의 태실을 축소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태실에서 출토된 태조와 세종의 태항아리도 전시실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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