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문화유산 이야기/21. 궁궐이야기

조선시대 왕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학이시습지야 2016. 10. 1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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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궁궐의 하루는 파루에서 시작해 인정으로 끝이 납니다.

 

 경복궁타령에 첫구절이 이렇게 시작되죠.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온~다~. 에헤~~"

새벽 네시경, 오경삼점이면(해가 질 때부터 해가 뜰 때가를 5등분으로 나누어 경이라 하고 경을 다시 다섯등분하여 점이라 한다)도성의 대문에 걸려있는 종이 33번 울리게 되면서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사람들 통행이 시작됩니다. 통금이 해제되는 걸 파루라고 하고, 반대로 통금이 시작되는 오후 10시를 인정이라고 하며 종을 28번 울리지요. 


  자격루(自擊漏)는 1434년 장영실과 김조에 이해 완성된 자동시보장치가 부착된 시계입니다. 세종대왕은 경회루 앞에 보루각을 세우고 자격루를 설치하였죠(현재는 수정전 왼쪽 계단 옆에 보루각 표지석이 그 위치를 알려준다). 자격루에서 시각을 알리면 이를 받아서 광화문, 보신각(원래 조선시대엔 종루라고 불렀죠), 숭례문, 흥인지문등 도성 도처에서 종을 울려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려줍니다. 자격루 자동시보 장치는 세종대왕이 승하하면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중종시대에 다시 복원되어 기능을 되찾습니다. 현재 국보 229호로 지정되어 있는 덕수궁 내의 자격루 일부는 이때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임금님의 하루 (05:00 기상 후 문안인사, 침전, 경복궁 강녕전)


  우리가 사극을 통해서 왕의 일상을 잠시 들여다 보는 것과 사료에 나와있는 기록들을 비교하여 보면 거기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괴리가 있습니다. 왕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비해 감당해내야 하는 막중한 부담과 빡빡한 하루하루 일상은 자못 숨막힐 정도입니다. 어린시절 사극을 보면서 '나도 조선시대에 임금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가정을 해보기도 하잖아요? 전국에서 올라오는 귀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자고 싶으면 자고, 사냥을 하고 싶으면 하고, 또 마음만 먹으면 절세미녀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고....

  하지만 성리학 근본이념을 바탕으로 제왕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제도등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을 압도하는 것같습니다. 과연 조선조에 왕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경복궁의 전각들을 차례로 돌아 보면서 400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왕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침전에서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수라고 하는 소세와 양치를 하고 의관을 차려입은 다음,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왕실 어른들께 문안인사를 올리지요. 효의 나라 조선에서 왕실 어른들께 문안인사는 왕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규범이었지요. 문안인사를 마친 왕은 근무지인 편전으로 넘어오시면서 공식적인 나랏일을 보시게 되는데요.. 이제 장소를 옮겨 임금님이 하루 중 가장 오랜시간을 보내는 편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침 7시 아침공부를 위해 편전으로 납시다


  편전인 경복궁 사정전으로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아침경연 즉, 조강을 하게 됩니다. 경연관으로 뽑힌 대신들과 함께 중국 고전인 사서삼경과 역사서등을 가지고 신하들과 토론을 하면서 제왕이 갖추어야 할 학식과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한시간 가량 아침공부를 마치면 늦은 아침 수라를 드시고 오전 업무를 시작합니다. 늦은 아침을 들게 되면 배가 고픈지 않느냐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아침에 일어나 초조반이라 하여 간단한 죽등을 이미 드셨기 때문에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 조강을 통해 이론 공부를 하였으니 이제 실무에 적용해야잖아요?

 

  나라의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정3품 이상인 당상관이 참여하는 아침조회를 시작합니다. 편전에서 하는 조회를 매일 한다고 하여 상참(常參)이라고 합니다. 대소신료 대부분이 참석하는 조참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한달에 4번 가량 열리는데 이때는 신하가 왕을 배알하는 수준이고 정책을 논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요즘의 청와대 비서실격인 승정원의 아침보고를 받고나서 육조 판서들과 나랏일 논의하면서 오전 시간이 지나갑니다. 


오12시가 되면 다시 낮공부시간이 됩니다.


  상참이 마무리될 즈음이면 낮공부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주강이라고 하는 경연인데, 다시 경연관들과 함께 주강을 한시간 가량 가지게 됩니다. 하는 방식은 조강과 같습니다. 점심 수라를 드시고 나면 다시 오후 왕의 업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방관리들의 인사를 받거난 오전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국사를 신하들과 논의하거나, 직접 당상관 이하의 관료들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는 일로 오후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오후 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다시 저녁 공부시간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경연은 하루에 세번을 하게 되는데, 조선시대 모든 왕들이 경연을 매일 꼬박꼬박 한 것은 아닙니다. 세종과 성종은 20여년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하루 세번의 경연을 가졌다고 합니다. 훌륭한 업적은 남기신 왕들은 이처럼 경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후 5시 대신들은 퇴근하고 홀로 남은 왕은? - 밤을 세워도 끝나지 않는 일, 일, 그리고 일..      

  당직 승지를 제외한 모든 대신들은 퇴궐을 하고 나면 왕의 공식적인 하루 일과도 종료합니다. 왕들도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소가 있는 침전인 강녕전으로 가서 저녁 수라를 들게 됩니다. 왕후의 침소를 찾게 되기도 하고 동궁전에 들러 세자와 부자간의 담소도 나눌수 있는 평화롭게 화기애해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이 시간입니다. 더구나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초에 기록하는 사관도 퇴궐하고 없어 더더욱 자유로운 시간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녁 수라를 들고 나서 왕은 다시 편전으로 넘어오시지요. 하지만 사정전은 바닥이 전돌로 되있어 온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정전 옆에 있는 만춘전이나 천추전으로 오시게 됩니다. 아직 임금님에겐 오늘 해야 할이 끝나지 않았거든요. 오전과 오후에 신하들과 경연과 국사를 논의하느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였지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왕은 신하들이 올린 정책들을 결국 최종 승인하여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별도로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에 대한 겸토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당면 과제는 각지에서 놀라온 장계라고 하는 보고서와 각 고을의 관리와 유생들이 올린 상소도 검토하여 답을 내어야 합니다. 한문으로 만기친람이라고 합니다. 만가지 일을 모두 직접 알아보고 답을 주어야 하는 자리가 왕의 자리입니다.

 

  특히 세종대왕께서는 워낙 공부하고 일하는 것에 즐거움을 찾으신 왕이었나봅니다. 사실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임금으로 세종대왕을 꼽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과 이 천추전에 모여 훈민정음이라는 위대한 한글을 창제하기 위해 밤마다 연구를 거듭하였지요. 그리고 장영실, 김번등 과학자들과 함께 천문과학기구였던 앙부일구, 혼전의등을 발명하여 처음으로 시연을 한 곳이 여기 천추전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 일년에 쉬는 날이 고작 보름??

 

  주 5일 근무제가 일반적인데 일부 유럽회사에서는 주4일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요일제가 도입되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쉬는 것은 구한말 갑오개혁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요일제가 없어 일주일 내내 일을 하게 되지요. 임금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년에 대략 350일을 일에 매달려 있습니다. 임금님이 쉬는 날은 세시명절과 벼슬이 높은 대신이 죽었을 때 하루나 이틀 쉬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이렇게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경연과 국정에 대한 압박으로 임금님의 평균 수명이 대신들들보다도 많이 짧았습니다. 영조대왕처럼 83세까지 장수하신 임금님도 계시지만 평균 44세 정도 수명을 사셨다고 합니다. 혹자는 산해진미로 인한 성인병을 주 요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과중한 책무에서 오는 압박도 원인이 될 것으로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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