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World Tour/41. APAC

[베트남 하노이] 출장차 잠시 둘러본 하노이 풍경

학이시습지야 2017. 11. 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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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08일(일) 10월 황금연휴에 해외출장이라...

  지난 9월초에 Vietnam을 대표하는 물류회사 회장단이 회사를 방문한 것에 대한 답방 형식을 빌어 합작 건을 논의키 위해 하노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10월 2일부터 10일까지 무려 8일에 걸친 황금연휴다. 여행을 좋아하는 직장인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사실 이 연휴기간에 아내와 함께 어디라도 나가보려 해보았지만 엄청나게 비싼 항공권을 사서 떠나기엔 만만찮은 부담이다. 하여 포기하고 있던 차에 회사에서 베트남에 현지공장을 지어 생산된 제품을 베트남 현지시장에 판매하자는 제의가 와 출장을 가야한단다. 아내에겐 미안했지만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 

  일단 출장계획이 잡히자 가능하면 연휴기간을 포함하므로서 근무하는 날 회사를 비우는 시간을 줄이고자 했다. 여기에 더해 가능하면 비행기 가격이 가장 저렴한 일자를 잡고 보니 10월 8일부터 12일까지가 가장 가성비가 좋았다. 숙소는 베트남 현지 사장을 잘 아는 사람에게 이미 사장님이 부탁해 놨으니 출장 아젠다와 스케줄은 마련하는게 내게 주어진 몫이다. 대한항공 홈페이지에들어가 할인항공권을 예약하고 현지공장 방문일정을 잡아 동행하는 분들에게 배포하였다. 


  기내 서비스가 아예 제거되어 미치도록 답답한 비행시간을 인내하여야 하는 저가 항공사를 피해 대형항공사를 선택하였다. 지난 1월에 태국여행에 저가항공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두시간을 넘어가는 비행구간은 돈을 더주더라도 기필코 대형 항공사를 이요하기로 하였다. 여행이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지않은가? 더우기 여행의 시장은 게이트를 통과하여 기내에 올라 지정되어 있는 자리에 앉을 때 가슴 저 밑에서 차올라오는 설레임인데... 그 설레임을 불과 1시간도 지나지않아 겨우 물한잔 던져주고 좁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잠이나 자라는 압박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그 황량한 서비스. 가격땜에 어쩔수 없이 내가 선택하였지만 그 이후로는 절대로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인다. 이륙을 위해 계류장을 벗어나 활주로로 향하는 중에 창가로 신축중인 2터미널이 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서있는 A380 뒤에서 거의 완공이 된 모습이다. 내년 1월에 정식으로 오픈한다고 한다. 만약 내년에 출장간다면 우리는 바로 저 신청사를 이용했을텐데, 대한항공과 Code share항공사가 주로 이용한다고 하니.   


  인천공항 상공에서 바로 선회하여 조금 지나니 창밖으로 안면도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하늘엑서 내려단 본 모습이 마치 오이가 줄기에 매달여 있는 거 같다. 꽃지해수욕장 앞에 서있는 할배섬과 할미섬은 눈에 선명하게 띄지않고 위치만 어림잡힌다. 안면도 끝에는 대천과 이어지는 연륙교가 공사중인지 다리 모습이 선연하다.



  드디어 하노이 상공으로 우리가 타고 있는 비행가 접어들었다. 하늘에서 처음 보는 하노이는 마치 유럽의 여느 도시마냥 지붕이 모두 오렌지색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영향이라고 한다. 하노이에 대한 정보를 여행책자에서 찾아보았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천년 고도이다. 1009년 리(李) 왕조를 창건한 리 꽁 우언(Ly Cong Uan, 李公藴)은 하노이에 수도를 정하고 이곳을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미인 탕 롱(Thang Long, 昇龍)으로 불렀다.이후 1397년 수도가 딴 호아(Thanh Hoa, 西都)로 천도할 때까지 수도의 역할을 했다.

  1802년 후에를 수도로 하는 응우옌 왕조가 들어섰을 때만 하더라도 하노이는 탕 롱으로 불렸으나, 1831년 민망 황제 치세기에 하노이라는 지명으로 굳어졌다. 하노이는 1873년 프랑스에 의해 점령당한 뒤 1887년부터 통킹 보호국의 수도가 되었다. 195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이후 북베트남의 수도가 되었고, 베트남전 종전 후인 1976년 7월 2일부터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하노이는 한자로 하내(河內) 즉, ‘강 안쪽의 도시’ 또는 ‘강 사이의 도시’라는 뜻이다. 홍 강(Song Hong)이 하노이를 끼고 흐르고 있으며 우기가 되면 홍 강이 자주 범람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베트남 쌀국수로 늦은 점심을 가졌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아침 비행기를 탔기에 오후시간이 넉넉히 남아있다. 일단 점심을 먹고 하노이 시내를 투어하기로 하였다. 하루 100불에 우리말이 가능한 젊은 친구로 가이드까지 세웠다. 시내는 우선 호치민과 관련된 명소를 돌아보고,  호안끼엠 호수 주변에서 저녁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운전기사와 가이드까지 전부 6명이 먹었는데 겨우 25,000원이 나왔다. 인건비가 싸서 그런지 가는 식당마다 종업원 수가 손님 숫자와 비슷하리만치 많다. 셋째날 반기문 일가와 매각관련 소문이 있던 하노이 경남랜드마크타워 안에 있는 한식당에 갔을 때도 손님 다섯사람을 종업원이 셋이나 와서 서빙하였다. 우리나라는 8명을 한사람이 고기도 굽고, 안주도 채워주고, 식사도 가져다 주는걸 비교하여볼 때 여기는 서비스 효율이 우리에 비해 낮은 건 분명하다. 우리 제조업 생산효율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것처럼. 



  첫번째로 찾아온 곳은 공자의 위폐를 모셔놓은 문묘(Van Mieu)다. 1070년 세워진 사당으로 경내에는 과거 베트남 귀족, 왕족들만 공부할 수 있도록 설립된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국자감'이 있다. 베트남에서는 학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장소라서 대학교 졸업식장소로도 이용된다. 우리가 방문할 때도 대학 졸업생들이 단체로 사진을 찍거나, 공자상이 모셔져 있는 전당에서 차례로 기도를 올리는 학생 무리들도 볼 수 있었다. 독립전쟁통에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2000년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니 양 옆으로 늘어선 회랑이 눈에 들어온다. 회랑에는 거북이 줄지어 서있고 등에는 비석 모양을 한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약 300여년동안 국자감에서 실시한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였거나 박사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놓은 것이란다. 자세히 유적과 유물을 알아보려고 가이드를 좆았으나 내가 여행 책에서 얻어온 정보 이상의 내용을 얻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가이드는 가이드라기보단 로드가이드로 보면 될듯. 날씨마져 푹푹 찌는지라 얼른 실내로 들어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고 싶었다.

 

  공자가 모셔진 사당으로 들어가니 우리가 마치 중국에 있는 어느 사당에 들어온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편액과 기둥에 걸린 주련에 익숙한 한자가 쓰여져 있다. 결국 베트남도 넓은 범주에서 중화문화권에 속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름을 들어봐도 우리처럼 3음절의 한자어에서 차용된 것처럼 들린다. 나중에 베트남 문화에 정통한 분에게서 얻은 지식. 현재 베트남어는 중국의 사성음에서 가져와 6성음으로 더 나뉘어졌고, 소리나는 것을 프랑스어를 변용한 알파벳으로 삼았다고 한다. 알파벳에는 6성음을 표기하기 위해 알파벳에 성음 표기를 부기하였다. 



  임금이 내린 교지라고 쓰여있다. "경을 국자감 대제학으로 임명하노라" 우리와 어쪄면 이리 똑같을까. 용덕왕 즉위원년(1742년) 9월 25일이니 우리나라에는 영조 재위 18년이다. 아직 미국은 독립하기 전이고...


  두번째 방문지는 호치민박물관(BAO TANG HO CHI MINH). 지난주 동남아 순방중이었던 문대통령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여 베트남전쟁 중에 민간인에게 안겨준 아픔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승적 차원에서 진정성있는 사과가 있어야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다져나갈 수 있다. 나아가 일본처럼 비열하고 뻔뻔한 고자세를 견지하는 모습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여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호치민은 베트남 민족의 영웅이요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박물관에는 그의 일대기와 함께 그가 입던 옷에서부터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외세의 침범과 지배 속에서 호치민은 국민들에게 "KHONG CO GI QUY HON DOC LAP TU DO, 독립과 자유보다 귀중한 건 없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내전을 이끌다가 1969년 통일된 베트남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호치민박물관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Mot Cot(한기둥)사원으로 들어가는 길로 연결된다. 한개의 기둥 위에 불당이 올라앉아있는 희귀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한기둥 사원이라고 불린다. 1049년 Ly Thai Hong 왕이 연꽃 위에 아이를 안고 있는 관세음보살 꿈을 꾼 후 아이를 얻게되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후로 이 사원에서 불공을 올리면 아이를 얻게 된다는 영험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규모는 아주 작지만 베트남에서 오래된 역사적인 유적으로 보물 1호로 지정되어 있다. 베트남 화폐 5000동 지폐에 들어있다.   


  일주사원 후문을 나와 대로변으로 나서면 넓은 광장이 나오고 돌로 축조된 신전처럼 생긴 건물이 베트남 국기 맞은편에 서있다. 하노이의 중심인 이곳이 바로 호치민이 밀납처리되어 모셔져있는 호치민묘이다. 호치민묘는 1975년 베트남 건국기념일에 맞춰 건축되었는데, 연꽃모양을 차용하였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총 11명의 정치지도자가 밀납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다. 호치민묘 앞에는 Quang Tun Ba Dinh공원이 있는데 1945년 9워 호치민수석이 베트남의 독립은 선언한 장소로 유명하다.


 호치민묘를 입장하려니 일행들이 너무 높은 습도 많이 지쳐있다. 약 두시간 반가량의 하노이투어를 접기로 했다. 호안끼엠 관광은 다음번 방문시에 하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가 시원하게 휴식을 갖기로 하며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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