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톤에 육박하는 동체가 떠서 하늘을 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다.
자주 해외를 들락거리다 보니 이제는 특별히 면세점 쇼핑을 하는 통과의례를 접은지 오래다. 딱히 사야할 물건도 없고, 다른 사람들처럼 명품 화장품을 쓰거나, 양주를 구매할 일도 없다보니 출국심사를 마치고 곧장 보딩게이트 한적한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탑승하려면 아직도 40여분 시간이 남아있어 책을 들었다. 늙으막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다보니 이번 여행기간동안 계획했던 진도를 맞추지 못해 어찌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결국 여행이 주는 재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짬짜미 공부를 하기로 스스로와 타협을 하였다.
어제밤에 늦도록 이것저것 주물럭거리는 바람에, 새벽녁에 겨우 잠이 들었다 이내 깨는 바람에 컨디션이 상쾌하지 못하고 무척 찌뿌듯하다. 책을 펼쳤지만 활자엔 집중하질 못하고 멍해지기만 한다. 하는 수 없이 책을 덮고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여행객을 싣고 뉴욕으로 날아갈 A380이 화물과 카페테리아 용품을 싣느라 분주하다.
이층 구조 객실을 갖춘 지구상 가장 큰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은 항공사마다 몇 개를 구비하였느냐가 항공사 레벨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전세게에서 가장 많은 110대 가량을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탑승객만 무려 400명 이상을 태울수 있다는 A380을 무게를 추정하여 보았다. 한사람을 기준해 가지고 타거나 부친 짐 무게까지 어림하면 최소 90kg는 될 것이고, 평균 400명을 계량하면 36톤이 (400x90kg)에 이를 것이다. 여기에 항공기 자체 중량에 항공유까지 합하면 아무리 안되도 40톤은 되지않을까?
40톤의 육즁한 기체가 전속력으로 활주로를 차고 나가다 시속 350키로에 이를 즈음 공중으로 뜬다면, 기체를 띄워 올리는 양력은 40톤 이상이구나 하는 엉터리 물리이론에 잠시 빠져본다. 물론 양력을 계산할 때는 날개 면적과 양력계수를 고려하여야 한다. 어쨌든 40톤이 넘는 기체가 날개 위와 아래를 스치는 양력의 차이로 하늘로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이론을 찾아낸 그 과학자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 과학자가 없었다면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이라는 사치는 꿈도 꾸지 못하였을테니....
역시 비행기는 A380을 타고 야간 뽀대가 난다.
엉뚱한 양력이론에 취해있는 사이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성급한 여행객은 벌써 길게 줄을 서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탑승객이 거의 보딩을 마칠 즈음 나도 좌석에서 일어나 게이트로 향했다. 보딩패스를 건네주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심을 가졌으나 매몰차게(?) 좌석표를 절취하여 건네준다.
오래 전에 홍콩 출장을 갈 때 일이다. 항공사 직원이 보딩패스를 받아 보딩체크기계에 집어넣자 이내 뱉어낸다. 직원이 튀어나온 제법 빳빳한 보딩패스 대신 직원이 가지고 있던 표를 주면서 이걸로 가져가란다. 패스 상단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보다 짙은 푸른색이다. 순간 "아~~ 비즈니스석이구나!" 이코노미가 만석이다 보니 내게 비즈니스석으로 승급된 표가 배정되는 행운이 날아온 것이다.
부질없는 기대를 접고 패스를 받아 게이트 브리지로 내려갔다. 표시된 좌석을 찾아가려니 2층으로 올라가는 브리지로 가란다.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좌석 사전예약을 해놓았다. 장시간 피로를 다소 줄이기 위해 비교적 편안한 좌석을 노렸는데 다행히 아시아나는 2층에도 이코노미석을 배치하였다. A380 2층에는 창가쪽에 두좌석을 배치하였다. 더불어 창쪽 좌석 옆에는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캐비넷이 있어 가방같은 짐이나 옷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자리를 잡자 가져온 짐을 캐비넷에 넣고 모니터를 켰다. 역시 레그스페이스가 다른 비행기에 비해 넉넉하다. 다리를 꼬고 앉아도 불편함이 없을 만큼 넉넉하다. 하지만 에미레이트항공에 비해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모든 승객에게 양치도구, 안대, 실내화, 귀마개가 들어있는 파우치를 나눠준다. 유려한 디자인을 담은 6가지 다양한 문양을 한 파우치는 탑승한 승객에게 항공사 레벨의 격을 다르게 느끼게 해준다.
이륙 후 한동안은 모니터로 영화를 보는데 자주 화면이 정지된다. 쉬지않고 나오는 안내방송 때문이다. 안내방송이 거의 없어진 걸 보니 드디어 배식시간이 다가온 모양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일본알프스가 아직도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우리를 바라보는 것같다. 서울 상공을 지날 즈음 얼핏 창밖을 내다봤을 때는 미세먼지가 띠 모양을 하고 서울 상공을 누르고 있었다. 정말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미세먼지층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다. 구름 아래 색깔이 다르다. 거무튀튀한 공해를 품은 먼지가 두텁게 층을 이루어 끝없이 이어져있는 모습이 눈을 찌푸리게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강하다"
아시아나항공 대표 기내식은 쌈밥이다. 대한항공이 공전의 히트를 친 전통비빔밥에 대항해 만든 쌈빱도 제법 외국 여행객에겐 인기가 높다고 한다. 맥주을 곁들여 식사를 하였다. 식사륾 마치고 나면 커피 타임인데 승무원에게 맥주를 하나 더 요청했다. 어제밤에 설친 잠을 벌충하기 위해 알콜을 무리하게 섭취하였다. 맥주를 주문하였는데 승무원이 맥주만 가져다 준다. 대한항공은 맥주를 주문할 경우 그 유명한 땅콩을 두봉지 가져와 "하나 더 드릴까요?" 하면서 친절하게 물어봐주기도 하는데... 하는 수 없이 과자부스러기도 함께 부탁하니 이번엔 딱 한봉지 가져온다. 단순한 사례 하나에 주관적인 판단을 확대할 수는 없지만, 직원들의 친절수준은 아시아나에겐 아직은 대한항공이 넘사벽이다. 사소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걸 역사가 짧은 아시아나는 아직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총수일가의 갑질이 문제지, 임직원들이 땀흘려가면 쌓아놓은 세계적인 수준의 항공서비스는 아직까지 대한항공이 한 수 위인거 같다.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출신들 중에는 서비스 품질교육 전문강사로 나선 분들이 제법 많다. 이러한 축적된 노하우는 남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무형자산이고 나아가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미국 땅이다...
강제로 잠을 청한 덕분에 제법 길게 잔거 같다. 지구 자전과 역방향으로 비행하다보니 밤이 짧게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다. 책을 펼쳐 거의 서너시간 가량을 보고나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캐나다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녹지않은 눈이 대지를 하얗게 덮고 있다. 캐나다 북부는 겨울 동안은 항상 저렇게 하얀 눈으로 덮여있을 성싶다. 가진 땅덩어리는 우리나라보다 수십배에 달하지만 정작 경작하거나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땅은 면적에 비해 그다지 많지않을 듯 하다.
보던 책을 덮고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카고가 인접한 미시간호를 지나고 있다. 남은 비행시간도 한시간 남짓 남았다. 승무원이 꺼놓았던 실내등을 모두 켜고 아침식사를 나눠주고 있다. 어제 먹은 쌈밥보다 가벼운 메뉴다. 역시 이번에도 멕주를 주문하였다. 아침을 먹고 내릴 준비에 들어갔다.
미국 입국 수속은 복불복인가???
장장 13시간을 날아간 A380이 드디어 뉴욕 관문인 JFK공항 활주로 위로 둔탁한 충격을 흡수하며 내려앉았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은 서울을 휘감고 있는 미세먼지띠조차 보이지않고 정말 맑고 푸르다. 기체를 빠져나오자마자 사람들 사이를 비짚으며 잰걸음으로 입국심사장에 도착했다. 영주권자와 단기여행비자로 구분되는 입국심사장에서 단기여행비자(ESTA) 줄 중에 가능하면 짧은 줄에 섰다. 나름 서두른 탓에 죽 늘어선 줄 앞쪽 순위에 설 수 있었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다른 줄은 이미 입국심사를 순서대로 하고 있는데, 내가 서있는 줄은 입구심사 데스크가 하나도 열여있질 않다. 심사를 담당하는 영사도 보이질 않고...
십여분동안 목을 길게 빼고 심사창구가 열리길 고대하였다. 겨우 창구 하나가 열리고 수속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입국심사 절차가 까다로와 제법 시간이 소요되는데, 겨우 창구 하나로 하다보면 늘어서서 대기중인 여행객은 한시간 이상을 족히 기다려야 할 거 같다. 다행히 줄 앞쪽에 자리잡은데다 이어서 또하나의 창구가 열리면서 속도가 빨라져 대기줄에 선지 20분만에 입국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짐을 찾는 트랙에 도착하니 빈 트랙만 빙빙돌고 있고, 트랙 옆에는 항공사 직원들이 승객을 대신해 짐을 트랙에서 내려 한쪽에 모아놓았다. 내가 부친 캐리어와 박스를 찾아서 입국장을 빠져나오면서 나를 마중나온 가족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나를 맞이해주는 가족이 없다. 하는 수 없이 공항이 제공하는 무료와이파이를 잡아 아들에게 톡을 날렸다.
2018년 4월 20일(금)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을 가진 보스턴에 여장을 풀다. 공항에서 아들과 톡을 나누고 한참을 기다리니 아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한결 듬직한 모습으로 성장한 아들을 보자 여간 대견해 보이질 않는다. 아내와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가 4년만에 한가족이 모였다. 아들이 가져온 차로 보스턴을 향해 출발. 여행일정을 조율할 때 아들은 보스턴으로 바로 직행하지말고 뉴욕에서 하루 정도 쉬면서 장시간 비행에서 올 피로를 회복하길 권했다. 하지만 주말밖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아들 일정도 고려하면 공항에서 바로 보스턴으로 가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뉴욕을 벗어났지만 금요일 오후로 접어들면서 도로에 차들이 늘어나 중간중간 정체를 빚기도 한다. 세시간 반 거리를 거의 다섯시간만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40. World Tour > 43. AMERICA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번째 미국여행]5. 보스턴의 자부심, 하버드대학과 MIT (0) | 2018.05.18 |
---|---|
[네번째 미국여행] 4. 미국의 시작, 보스턴 Freedom Trail을 걷다. (0) | 2018.05.10 |
[네번째 미국여행]2. 스카이패스 마일리지땜에 대한항공을 계속 이용하여야 하나? (0) | 2018.05.09 |
[네번째 미국여행]1. 2년마다 미국을 방문하다 - 뉴욕 - 보스턴 - 맨하탄 - 시카고 (0) | 2018.05.09 |
[여행 갈무리] 16. 아들과 함께 하는 다섯번째 미국여행 - 열흘간의 여행이 마치며 (0) | 2016.09.07 |